• 최종편집 2023-0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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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27일 밤에 발생한 부산역전 대화재 극복을 위해 긴급 출동한 미군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정전협정 체결로 치열한 전투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제 2군수사령부 사령관 위트컴 장군은 책상 위에 있는 서류들을 결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복귀와 한국군 재건을 위해 한국군에게 인계할 장비와 화기 및 추가적인 지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복구 사업을 담당하는 ‘AFAK(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 미군대한원조)’ 프로그램 업무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 복구 및 한국군 전력증강을 위해 연일 계속된 후속조치로 피로한 상태였던 어느날 밤에 위트컴 장군 방의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1953년 11월27일 밤 8시30분경에 부산 영주동 판자촌에서 시작된 불은 갑자기 불어온 강풍으로 지역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며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 동광동을 지나 중앙동 부산역까지 번지며 일대가 거의 전소되는 비극이 일어났다는 보고였다.  


불길은 이튿날 새벽 6시경 잡혔으나, 29명의 사상자와 6천여 세대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주택 3,132채 및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던 옛 경부선 부산역사와 부산우체국이 전소돼 버렸다. 


게다가 당시 광활한 지역의 일제 건축물과 6·25남침전쟁을 지원했던 미군 막사 같은 주요 건축물이 모두 전소되며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위트컴 장군은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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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69)]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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