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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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미국 중부 캔자스주 토피카(Topeka)에서 태어난 위트컴 장군의 어린시절 모습. [사진=박주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 장군은 1894년 미국 중부 캔자스주 토피카(Topeka)에서 주대법관을 역임한 아버지 조지 허버트 위트컴과 당시 남자대학에서 최초로 강의한 여성 법률가이며 교수인 어머니 제시 위트컴 사이의 5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친가는 물론 외가가 모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집안에서 성장한 위트컴은 전통적인 청교도 가문의 엘리트 교육을 바탕으로 기독교적 정의와 인간에 대한 기본 사랑을 터득하게 된다. 


캔자스주 토피카의 워시본(Washbon)대학 재학시에는 대학 편집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각종 토론회에서 우수 토론자로 선정되었고 미식축구 선수로도 맹활약을 했다.  


또한 아펜잴러와 언더우드가 활동했던 SVM(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 학생자원선교활동) 멤버로 필리핀 선교사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위트컴은 대학 졸업 후 다양한 회사에서 간부로 근무하였고,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기업 및 정부기관의 예산, 조직, 기술 등에 관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할 수 있었다.  


Southwestern Telephone Company 등 여러 통신회사에서 세일즈 매니저, 지역 책임자로 근무했고, 보스턴 시정부의 업무 개선을 위해 다양한 지원활동도 했다.  


또한 3백만 불 이상의 실업자 구호 펀드를 모금했으며, 시정부의 자문위원회에 참여하여 정책에 대한 조언을 통해 100만 불 이상의 예산을 절감하는 역량을 발휘했다.  


당시 위트컴은 공화당의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할 정도로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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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0)]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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