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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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가장 치열했던 오마하 전투에서 5만여 명의 연합군 병력과 군사물자의 수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모습. [사진=박주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하와이의 YMCA에서 일하다가 1917년 National Guard 및 예비군 장교(ROTC)로 임관한 위트컴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1914-1918)하자 미 육군 16사단 32연대 보병 장교로 제2차 마론강 전투에 참전하면서 군인의 길을 걷게 됐다.  


위트컴은 1941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의 참전이 결정되자 아이슬란드에 미군 장교 최초로 파견되어 모든 항만을 지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43년 대령으로 진급한 후 영국의 브리스톨 해협의 뉴포트(Newport)에 위치한 미 11항만단 지휘관으로 보직되어 강한 훈련 및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에 가장 치열했던 오마하 전투에서 5만여 명의 연합군 병력과 군사물자의 수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상륙작전 성공 후에 노르망디 해변 및 주변 항만들의 운영 및 보급 작전을 지휘하였고, 이후 폐허가 된 프랑스 루앙(Rouen)시의 항만 운영 및 재건을 위한 임무를 추가로 수행하여 지역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이 작전의 공로로 위트컴은 훗날 6·25남침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으로 한국군 재건에 기여했던 전쟁영웅 밴플리트 장군과 함께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또한 위트컴이 대학시절에 선교사로 활동할 꿈을 꾸었던 필리핀에서의 미군 상륙작전이 1945년에 있었는데, 이때 그는 필리핀 마닐라 항만의 지휘관으로 보직되어 17만 명의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수송, 군수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는 종전 후 전역하여 사회활동을 했으나 냉전시대였던 1950년 현역으로 복귀하여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의 추위속에서 그린랜드 공군기지 건설 등을 위한 수송 및 보급작전을 지휘하여 당시 ’미군 최고 군수전문가‘의 위치에 올랐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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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1)]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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