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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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재건 현장을 방문해 토의하는 위트컴 장군과 제2차 세계대전시 프랑스 오마하 해변으로 연합군이 상륙하는 모습. [사진=박주홍 장군]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년 대령으로 진급하여 영국의 브리스톨 해협에 위치한 11항만단 지휘관으로 보직됐고,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노르망디 상륙작전 지원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때 지역주민들에 대한 예의, 군인으로서의 행동 규범, 제복 착용에 이르기까지 모범적 모습을 보이는 11항만단 부대원들에 대해 애버데어(Aberdare) 시민들은 감동했다.  


특히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며 주민들이 어떻게 차를 만드는지를 배우는 등 주민들과의 친화 과정은 대민관계의 전형적 모델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중심인 존중의 리더십은 추후 한국 국민들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 결과로 당시의 브리스톨 해협 애버데어 시민들이 스스로 11항만단을 ‘The Aberdare Port’라고 부르며 자긍심을 가질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또한 11항만단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가장 치열했던 프랑스 오마하(Omaha) 해변 전투에서 5만여명의 연합군 병력과 군사물자의 수송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후 기능이 마비된 오마하 해변과 주변 항만들을 재건하면서 정상적으로 항만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임무였다. 그러나 그는 상륙 이후 초기 90일 동안 총 926,689톤, 일일 10,296톤이라는 엄청난 물량을 처리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위트컴은 파렛트, 크레인, 트럭, 철도, 화물의 적하역, 장비의 엔진 종류, 나라별 처리 방식의 차이점, 해변의 조류 등 엄청난 수준의 전문성에 바탕을 둔 항만 운영에 대해 누구보다도 심도 있는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었기에 상륙 이후 지속적인 군수지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훌륭하게 수행하자 독일군에 의해 폐허가 된 프랑스 르앙(Rouen)을 재건하라는 추가적인 임무가 부여되었다.  


르앙은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로서 센 강을 관통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내륙의 항만 도시이다. 유서 깊은 르앙 성당이 위치하고 있고, 역사적으로는 자유의 여신상이 조립 및 분해된 곳이며, 잔다르크가 화형 당한 곳이기도 하다.  


위트컴은 임무를 부여받은 즉시 끊긴 다리들을 건설하고 마비된 항만들의 기능을 회복하는 재건 작전을 수행했다. 위트컴의 지휘 아래 수개월간의 집중적인 복구 노력을 통해 다시 큰 선박들이 이동하게 됐고, 도시기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위트컴이 영국 애버데어에서 보여준 대민관계와 프랑스 르앙을 재건한 경험, 그리고 그의 리더십은 차후 부산의 재건을 위한 값진 토대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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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3)]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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