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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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초대총장 윤인구, "위트컴 장군, 이 땅의 꿈과 교육 비전을 사주시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이 대학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 및 허위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취소되는 소동이 있었던 부산대는 1946년 9월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단과대학으로 개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산수산대와 결별 이후 충무동 등을 전전하다 정착한 부산시 서구 대신동 산자락 판잣집 교사에 인문학부가, 대연동에 수산학부와 대학 예과로 나뉘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1950년 6·25남침전쟁이 터지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기타 대학과 부산에서 '전시연합대학'에 편제되었고, 휴전 이후 부산역 대화재가 발생하기 직전인 1953년 9월에 부산대는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당시 윤인구(1903~1986) 부산대 초대총장은 종합대학에 걸맞은 캠퍼스 부지를 구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한편 부산역 대화재의 참사로 발생한 피해 복구와 총체적인 재건을 위한 AFAK(미군대한원조)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1954년 6월8일 서구 대신동 부산대의 판잣집 건물로 잘생긴 벽안의 미군 장성이 들어섰다.  


윤인구(1903~1986) 부산대 초대총장의 초청을 받고 온 위트컴(1894~1982) 미2군수사령관이었다. 반갑게 위트컴 장군을 맞은 윤 총장은 집무실에 붙여놓은 그림 한 점을 보여주며 말했다. 


"장군, 내 그림을 사주시오"라는 윤 총장의 요구에 위트컴 장군은 "무슨 그림이요?"라고 반문했다. 


이에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은 "이 땅의 꿈과 교육 비전이 담긴 그림이오"라는 답과 함께 흥정하는 눈빛과 잘생긴 얼굴이라는 느낌마저 압도하는 강렬하고 찌를 듯, 파고들 듯한 열정으로 위트컴 장군을 간절히 응시했다. 


위트컴 장군은 잠시 고민하다가 윤 총장의 “부산대의 미래에 투자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꿈의 내용에 주목했고, 도시 재건 차원에서 통 크게 수용하며 "하하. 그거 흥미롭군요. 좋소. 내가 그 그림을 사겠소!"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윤 총장이 제시한 그림은 부산대 장전 캠퍼스 배치도였다. 대학 문을 열었으나 캠퍼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그는 위트컴 장군의 통큰 수락에 감격했다. 바로 인류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거래되는 순간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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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79)]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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