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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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전쟁 당시 미 2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산에 부임했던 위트컴 장군이 부산 메리놀 병원 건립을 위해 한복을 입고 모금활동을 벌이는 모습. [사진=위트컴희망재단·유엔평화기념관]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 장군은 피난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판자촌을 자주 둘러보았다. 그는 어느 날 영도를 시찰하던 중 보리밭에서 고통스럽게 출산하는 산모를 보면서 조산원과 병원 건립 지원을 결심한다.


때마침 6.25남침전쟁 발발 두 달 전인 1950년 4월15일, 메리놀수녀회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4가 현 부산가톨릭센터 자리에 진료소를 열고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부산 최초의 가톨릭 의료기관인 '메리놀수녀의원'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열악한 진료소의 입원 시설과 전문의료 인력부족으로휴전 이후 밀려오는 부상자와 피난민 환자들을 감당해낼 수없었다. 이에 따라 병원 측은 위트컴 장군과 AFAK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위치에 지상 3층, 16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증축하기로 결정했다.


1954년 7월29일 기공식과 함께 공사에 들어갔으나 신축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위트컴 장군은 사령관의 체면을 버리고 본인은 파란 눈의 갓을 쓴 노인으로, 메리놀 수녀회와 부대원들은 한복 서양인으로 단장하여 거리 가장행렬을 하며 모금 활동을 펼쳤고, 예하 미군 장병들도월급의 1%를 기부하며 모금에 참여했다.


당시 메리놀수녀회의 요한나 수녀는 "1953년 10월 부산에 와서 간호사로 근무했는데 피란민 대다수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없고 집도 없어눈물이 나지 않을 수없었다"며 "부산역전 대화재 직후 하루에 화상 환자를 포함해 2000여 명의 환자가 몰려 병원이 미어터졌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병원 신축이 절실했는데 자금난을 겪자 위트컴 장군이 휘하 미군 장병에게 월급의 1%를 공사비로 내게 해 공사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위트컴 장군이 메리놀병원 신축뿐 아니라 침례병원, 복음병원, 성분도병원을 짓는 데도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고 증언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메리놀 종합병원’은 거리 가장행렬을 하며 모금 활동을 펼치는 등우여곡절 끝에 착공한지 8년 만인 1962년 11월 지금의 자리에 준공할 수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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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83)]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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