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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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 장군과 AFAK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부산 메리놀 병원의 현재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대적인 교통망을 구축하고 소방 장비의 진입로를 확보하는 중요한 도로 및 교량 건설사업도 추진했다. 국제시장을 통과하는 부민동로가 개통되었고, 메리놀 길을 완공함으로써 혼잡한 도심의 교통량을 줄이고, 메리놀 병원의 진입로를 확보하게 되었다.


위트컴 장군과 AFAK의 병원 건립 사업은 메리놀병원을 포함하여 7개의 병원을 목표로 진행됐다.특히 메리놀병원은 총 160개 병상을 보유한 당시 한국 최고의 병원으로 건립됐는데, 병원 건립을 위한 미군들의 모금 캠페인으로 약 6만 달러가 모금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의 대화재 재건 프로젝트는 위트컴 장군의 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장군은 재건활동을 전담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인 PMP(Pusan Military Post)를 신속히 구성했고, 관련 기관과의 협력을 위한 기구도 별도로 만들어 노력의 통합에 만전을 기했다.


주택 건설 사업은 도시 재건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서 동래에 111가구의 주택단지와 영도에 109가구의 주택단지를 8월에 완공했다. 또한 UNKRA와 협력하여 공동 프로젝트로 1,100채의 주택을 추가로 짓도록 함으로써 부산의 주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또한 17개 학교에 대한 신축 및 수리 사업도 진행됐고,AFAK 프로그램은 특히 고아원 지원 사업에 역점을 두었다.5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위트컴 장군은 군부대가 53개의 고아원을 직접 지원하게했으며, 기술을 가르치고 취직까지도 지원했다.


이를 종합하면 1953년 11월부터 1958년 11월까지 총 6백여만 달러의 AFAK 예산이 투입됐는데, 1954년 6월까지 이미 3백여만 달러가 부산에 집중됐다.


예산사용을 살펴볼 때 동래, 송도, 영도 등 화재와 관련 없는 지역에서의 공사가 더 많았다는 것은 단순히 화재 피해지역에 대한 긴급공사가 아니라 부산 도시계획 전반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인류애적인 도시 재건 차원의 프로잭트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후 복구를 위한 UN의 원조 방법으로서 1959년까지 1억2천2백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한미 상호안전보장법(MSA, Mutual Security Act)에 의해 미국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1961년까지 총 17억4천4백만 달러를 지원받게 만들었다.


위트컴 장군은 AFAK 기금은 물론 추가적인 예산 확보를 위해 UNKRA와 미국 정부에 의한 지원 방법인 FOA(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를 균형 있게 활용함으로써 부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지원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 정부 및 미군, UN, 한국 정부 및 한국군, 민간기업 및 부산 시민 등 다양한 조직과 관련된데다,조직별 복잡한 예산체계로 효과적지원에는 한계가 있었다.그러나 각 조직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고, 이들의 인류애적인 노력을 통합해빠른 시간내에 놀라운 전후 위기극복의 성과를 올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시행한 부산의 재건 과정에서 발휘된 위트컴 장군의 추진력은 마치 하나의 종합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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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84)]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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