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건과 부흥을 위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끊임없는 지원과 원조를 했던 ‘한미재단’을 설립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8군 사령관(1951년 4월~1953년 1월) 겸 유엔군 사령관이던 ‘한국 육군의 아버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 및 위트컴 장군 [사진=김희철]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위트컴 장군은 부산 주재 미 군수사령관으로 1953년부터 1954년 12월까지 한국군과 부산 재건 임무를 맡았다.
그는 이를 위해 스스로 미육군한국지원프로그램(AFAK)을 만들어 부산대 등 교육시설, 메리놀병원 성분도병원 등 각종 의료시설, 고아원 건립, 양정과 청학동 주택단지 건립, 도로 교량 건설, 부산역전 대화재 이재민 구호를 포함한 수많은 인도적 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의료시설 재원이 부족해지자 위트컴 장군은 자선 바자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직접 한복을 입고 홍보 행렬에 참여했고 예하 부대별로 고아원 등 후생시설에 자매결연으로 후원과 기부를 유도했다.
대구에 있는 5군수지원사령관을 역임한 박주홍(육사42기) 장군은 “위트컴 장군은 당시 한국 기업의 어려움을 정성을 다해 본국에 알렸고, 이는 전후 복구와 우리 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증언했다.
이어 “테일러 미8군 사령관도 위트컴 장군에게 ‘귀하가 요청한 한국 재건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가 곧 부산에 도착한다’는 문서를 보냈는데, 이를 통해 그가 헌신적으로 전후 복구에 임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미 군수사령관 임기를 마친 위트컴 장군은 1954년 말 전역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