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1954년 퇴역한 후에도 한국에 남은 위트컴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을 맡아 한미 외교라인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8군 사령관(1951년 4월~1953년 1월) 겸 유엔군 사령관이던 ‘한국 육군의 아버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과 함께 ‘한미재단’을 설립해 미국에서 한국을 돕는 공공과 민간의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한국 재건과 부흥 원조에 나섰다.
특히 50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위트컴 장군은 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보육원과 고아원을 짓는 등 전쟁고아 지원에 온 힘을 다했다.
그가 만든 미육군한국지원프로그램(AFAK)에서도 고아원 지원 사업에 역점을 두고 군부대가 53개의 고아원을 직접 지원하도록 추진했으며, 기술을 가르치고 취직까지도 연결해 주었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뿌리내린 위트컴 장군은 1982년 서울 용산 미8군 기지에서 심장마비로 운명하자 그 스스로가 원한 대로 ‘제2의 고향’인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졸기(卒記)를 실은 ‘부산일보’ 1982년 7월23일자 기사 제목도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 부산 UN 묘지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