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3-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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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들을 위문하는 위트컴 장군과 그의 아내 한묘숙 여사. [사진=박주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국에 남아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린 위트컴 장군은 그가 설립한 ‘한미재단’을 운영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쟁고아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인 한묘숙 여사를 만났다.  


1963년 한국 국민들을 돕는 사회사업에 매진하던 위트컴 장군은 그날도 전쟁고아들을 위문하기 위해 ‘익선원’을 찾아갔다. 그때 한 여사는 충남 천안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보육시설인 ‘익선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여사는 명망 가문의 딸로 언니가 여성 소설가 한무숙이고, 동생 역시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아내 소설가 한말숙이다.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부산으로 내려와 4년간 살면서 1945년에 부산여고를 졸업했고 영어 회화가 가능해 위트컴 장군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작고 가냘프지만 강인하고 용기있는 여자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언론사 인터뷰에서 위트컴 장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군님은 선물을 한아름 들고 여러 고아원을 자주 찾았어요. 전쟁고아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희망을 주는 연설을 하고는 공책과 연필을 선물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겼죠. 익선원 아이들도 장군님 오시는 날만 기다렸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주 고아원 운영에 대해 장군과 의논하고 기부도 받았다. 1964년 어느날 그녀는 ‘익선원’을 찾아온 장군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도움을 청했다. 그것은 본인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한 유학정보 및 도움 요청이었다.  


그녀의 색다른 요청에 놀란 위트컴 장군은 그 부탁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동안의 ‘익선원’ 방문을 통해 가냘프지만 강인하고 용기있는 한 여사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한 여사의 부탁을 들어주면 이별을 하게 될 상황이었다. 위트컴 장군은 생각다 못해 중대한 결심을 하고 며칠 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전화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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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87)]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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