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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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7천인 대회’에서 정계 일선 퇴진을 선언했던 마오쩌뚱은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집권하여 사망전까지 10년간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사진=권성욱]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네륭전 부주석은 ‘문화대혁명’으로 2000만 명이 사망했고 1억 명이 박해를 받았으며 재산 손실도 8천억 위안이라고 증언했다. 이렇듯 중국은 충견을 활용한 피의 숙청과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점철로 이어진 마오 왕국이다. 


아무튼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견고해진 마오 왕국은 10년간만 지속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마오쩌뚱이 파킨슨병에 시달리다가 1976년 9월에 운명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뚱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나 문화대혁명의 잘못을 부각시키며 개혁·개방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3년뒤인 1981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선언’의 역사결의를 채택하며 경제발전에 치중했다 


덩샤오핑 집권기간 중인 1989년 6월 ‘텐안먼 항쟁’이 발생했다. 이는 소외된 홍위병 세대와 젊은 지식인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체제 자체의 타도보다는 문화대혁명에서 얻지 못한 정치개혁 및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비폭력 시민혁명이었다. 


허나 덩샤오핑과 원로들은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텐안먼에서 총칼과 탱크로 무력 진압했다. 


그런데 ‘텐안먼 항쟁’은 실패했지만 이를 통해 시진핑 등 상류층 자제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보황파 홍위병 세대가 중앙에 접근하며 다시 정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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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Crisis M] 피의 숙청과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점철로 이어진 마오 왕국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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