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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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에게 부산 재건 계획을 보고하는 위트컴 장군과 존경하는 남편 위트컴 장군의 사진을 들고 있는 생전의 한묘숙 여사. [사진=박주홍]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돌이켜 보면 결혼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을 맡아 백악관과 긴밀히 연락하며 한미 외교라인의 가교 구실을 했던 위트컴 장군은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고문 신분으로 사이공에 갔다. 그때 한 여사도 함께 따라가 그곳에서 몇 해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위트컴 장군은 한 여사에게 “홍콩에 한 번 다녀오라”고 부탁했다. 홍콩에서 중국으로 갈 방편을 마련해보라는 말도 남겼다. 그 이유는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한 여사가 홍콩을 드나들던 1979년, 홍콩 사업가의 초청으로 중국 본토에 입국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 위트컴 장군은 아내에게 “6·25남침전쟁 때 죽은 미군 병사의 유해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2011년 4월 주간동아에 실린 한 여사의 생전 인터뷰는 이렇다. “장군님이 왜 중국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그토록 애썼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가 중국으로 갈 때면 장군님은 지도 한 장과 만날 사람의 리스트, 미국대사관 위치를 알려줬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장군님은 주프랑스 미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일한 적이 있어 그때 사귄 중국 고위층을 잘 알았어요”라고 덧붙였다. 


또한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 내리면 마중 나온 사람이 ‘홍치’(紅旗·중국 자동차 상표)를 끌고 와 나를 에스코트했는데, 장군님이 다 연락을 해놓았는지 그대로 따라가면 됐어요”라며 신기한 듯 미소를 지었다.  


특히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유해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는 위트컴 장군도 일절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만약 우리가 ‘뼈다귀’ 찾으러 왔다면 아마 미쳤다고 오해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수십 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가다 그녀는 아예 중국에 눌러앉았다. 주로 베이징호텔과 젠궈(建國) 호텔에 투숙했는데, 젠궈호텔 810호에서는 8년간 거주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기자가 “30년이 넘었는데 왜 지금까지 미군 유해 발굴을 계속하느냐”고 묻자 한 여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장군님이 돌아가실 때도 ‘북한에 묻힌 유해를 제발 미국으로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데요.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어요. 사별 후에 미혼이었던 그가 구태여 나와 결혼한 건 자신이 죽어도 이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회상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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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0)]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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