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3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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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묘숙 여사의 미군 유해 발굴 소식을 처음 보도한 ‘신동아’ 2011년 5월호. 故 한묘숙 여사가 가지고 있던 북한 입국 비자. [사진=박주홍/신동아]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묘숙 여사가 민간 차원에서 특히 여성의 신분으로 이러한 유해발굴 사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고, 이로 인해 한때는 이중간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유골을 찾으러 왔다고 할 수 없어 중국 대리상을 통해 도그택(군번줄)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군번줄을 가져오면 하나에 500달러, 혹은 1,000달러를 주었는데 큰 돈이 계속 투입되었다. 


또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유골도 사 모아 보았지만, 대부분이 짐승들의 뼈였다. 어떤 때에는 북한이 정치적 흥정을 붙이기도 했던 와중에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5년 이후에 숫제 문을 닫아버려 북한 방문이 더 어려워졌다. 


한 여사가 유해발굴 사업을 위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1982년 7월12일, 86세의 위트컴 장군이 서울 용산의 미8군 전용호텔이던 내자호텔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위트컴의 평생 숙원인 유해발굴 사업 때문에 존경하는 남편의 임종도 못 지키게 됐다.  


아무튼 시간과 노력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지만 위트컴의 미군 유해발굴 송환 의지와 한묘숙의 헌신적 노력은 그 이후 한·미 국책사업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중국에 오래 있다 보니 그녀를 찾는 한국 사람도 많이 생겼다.  


1980년대 후반 한 여사는 주중 한국대사관과 ‘비슷한’ 역할을 했는데,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방중(訪中) 요청 친서를 직접 공산당 간부에게 전달했고, 대기업 인사들과 중국 고위층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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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전쟁사(191)] 6·25남침전쟁후 국가재건의 선구자 위트컴 장군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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