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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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부대 기념 코인[사진=5사단]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상징 명칭이 ‘열쇠부대’로 불리는 5사단은 1948년 4월29일 경기도 수색에서 3, 4, 9연대를 기반으로 5여단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후 여단 주둔지가 전라남도 광주로 변경되었고, 1949년 5월12일, 5보병사단으로 승격했다. 


이때 15, 20연대가 사단으로 배속되었다. 초대 사단장은 송호성 준장. 이후 1949년 7월에는 백선엽 대령이 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사단은 15연대를 전주에, 20연대를 광주에 주둔시켜 빨치산 토벌을 주 임무로 하며 부대 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고,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진압에 투입되었다.


이후 1950년 6.25남침전쟁이 발발하면서, 육군본부의 소환으로 서울 용산에 올라와 북한군 남하 지연작전에 참여하였다. 이 시점에는 백선엽이 1사단으로 옮겨가고 이응준(군영1기) 준장이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말이 지연전이지, 닥치는 대로 투입하라는 채병덕 총장의 삽질 작전지시로 말미암아 예하 부대들은 사단장조차 모르는 사이 많은 병력이 사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와중에 2개 대대로 부대 건제를 유지했던 15연대는 1개 대대만 남은 1사단 13연대 재건을 위해 해체되고, 20연대 역시 창동 - 미아리 축선 방어전을 위해 한강 이북에 투입되었다가 전멸하여 지휘 가능한 연대들이 사실상 없어졌다. 


그래도 남은 병력들을 긁어모아 7월1일부터 시흥전투지구사령부 예하부대로서 지연전을 전개하며 철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나마 있던 병력들까지 분산되어 17일에는 기어이 사단이 해체되기에 이른다.


이후 1950년 10월8일 대구에 주둔 중이던 27연대, 마산에 주둔 중인 35연대, 부산에 주둔 중인 36연대를 근간으로 대구에서 5보병사단을 재창설하였고, 이 연대들이 지금까지 이르게 됐다.


다시 재창설된 5사단은 이후 수많은 전투를 치루었는데, 그 중 36연대가 미 2사단 예속으로 치룬 ‘피의 능선 전투’와 ‘가칠봉 전투’가 유명하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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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250)] 화려한 사단장의 애대심이 오히려 과유불급(過猶不及)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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