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을지훈련이 끝나고 함께 고생했던 작전장교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다음 보직으로 영전했고 후임 작전장교로 육사후배 백창진 대위(육사40기)가 전입을 왔다.
필자도 을지훈련시 부르튼 입술이 터져서 부어오르는 먹지 위장크림효과로 사단장 및 참모 등 상급자들에게 각인되며 인정받아 심사 대상자가 되는 다음해에 진급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한 사단기동훈련이 끝나고 진급시즌 막바지인 11월에 이르자 사단에서 그렇게도 갈망했던 강수명 작전참모(육사31기)가 드디어 진급하여 병과의 장인 대령반열에 올랐다.
사실 대령 진급은 사단급 부대에서 매우 힘든 사례였다. 통상 대대장과 사단참모 보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중요 보직을 수행해야 진급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아니면 군단급 이상의 부대에서 주요보직을 마치고 필수 보직인 사단 작전참모로 근무하면 간혹의 진급하는 기회를 주어지기도 했는데 당시 참모는 후자의 사례였다.
강수명 대령 진급 예정자는 작전참모 보직을 정보참모 임무를 수행하던 김형배 중령(육사34기)에게 인계하고 65동원사단 연대장으로 영전했다. 이후 장군으로 진급하는 그는 육군대학 교수부장직을 역임하고 전역하여 평택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편 새로 부임한 백창진 대위는 탁월하게 작전 장교 임무를 수행해 필자와 같은 해에 소령으로 진급했다.
그는 그해 12월2일, 신임 작전참모인 김형재 중령에게 업무보고를 준비하여 능력을 인정받으며 작전처 총괄 선임장교로 활발하게 임무를 수행했는데 김 중령으로부터 무서운 후배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탁월을 넘어 출중했다.
희비애환(喜悲哀歡)을 느끼는 인생과 진급은 ‘운7기3(運七技三)’이지만 어떻게 보면 본인의 능력과 업적을 우선 쌓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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