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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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김종필 본인이 고안한 ‘재건복’을 입고 있는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 대통령 후보 시절 모습[사진=김종필 비서실/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한때 김종필은 박정희 친위 세력의 견제로 여러차례 장기간 외유를 떠나기도 했으며 외유를 떠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한 발언으로도 유명하다.  


특명전권대사 직함으로 1년 넘게 외국을 다니면서 수교협상 임무를 맡기도 했다. 특히 미·일의 적극적인 주도로 시작된 1964년 일본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의 막후교섭으로 한일협정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때 대일 청구권 자금의 가장 큰 몫을 가져간 것은 대표적 공업 기반시설인 포항제철이었는데 전체 자금의 절반이 넘는 55%가 투입되었다. 


이 밖에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소양강댐 건설, 영동화력발전소 건설 및 상하수도 시설 확충 비용으로 할당된 청구권 타결액은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민간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총 8억달러였다.  


베트남 파병으로 받은 60억 달러와 비교하면 36년간의 지배에 대한 배상금으로는 헐값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헌데 무상자금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본, 대만에 이어 강국이던 필리핀이 5억5000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이 3억 달러, 인도네시아가 2억2308만 달러, 미얀마가 2억 달러, 베트남이 3900만 달러 순으로 유무상을 모두 합쳐 필리핀과 더불어 가장 많은 자금을 받아낸 셈이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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