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2(금)
 


대통령4.png
노태우 대통령이 야당 3당 총재와 함께 1989년 12월15일 오후 6시부터 7시간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과 TV중계 등 5공 청산을 마무리하는 11개 조항을 합의하고 이튿날 새벽 1시에 청와대 회담장을 나서는 모습 [사진=김종필 비서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유를 떠났던 김종필은 1965년 12월 민주공화당 의장으로 다시 선출되고, 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로 출마해 당선된다.  


1971년 3월 본인이 신설한 초대 부총재가 되어 1971년 5월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의원 1번으로 출마하면서 또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런데 민주공화당이 1971년에 있었던 2차례의 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는 차원으로 그해 6월에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다시 박정희 정부의 충실한 2인자로 행동하며 1972년 ‘10월 유신’에도 현직 국무총리 입장에서 지지했다.  


1973년에는 유신정우회로 입당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10월유신’ 이후로 박정희는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상황만 나타냈고,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충돌하던 김종필은 지쳐버려 결국 1975년 12월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국무총리직을 사퇴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1979년 ‘10.26사건’ 이후 김종필은 민주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며 민주헌법에 따라 직선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유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거에는 불출마했다.  


이 시기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이른바 '3김'의 한 축으로서 서울의 봄을 구가했으나 ‘12.12사태’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서 정치 활동이 금지당했다. (다음편 계속)


태그

전체댓글 0

  • 4629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직업군인 사용설명서(290]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연말 부대방문 애피소드⑭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