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팩트=김한경 기자)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이념으로 1977년 방위산업 진출
25년만인 2015년에 전면 철수,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한화에 매각
김동길 박사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회고하는 글을 읽다보니 이 회장을 여러 해 모셨던 운전기사의 얘기가 눈길을 끈다. 그는 “우리 회장님은 삼성보다 나라를 더 걱정하신 분”이라고 했다. 그 세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찡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창업주를 가진 ‘삼성그룹’이 2015년 7월 1일 한화그룹에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방위산업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손자가 실질적인 그룹의 총수가 된 지금 삼성이 방위산업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은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이념에 따라 1977년 삼성정밀공업을 창립하였고, 1987년 ‘삼성항공산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꾸면서 항공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그 후 2000년 ‘삼성테크윈’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각종 항공기용 엔진, 광학카메라, K-9 자주포 등 첨단 방산제품을 생산하여 대한민국 안보를 지킨 것은 물론 해외 수출을 통해 국부 창출에도 커다란 기여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산업은 이윤율이 3∼5%에 불과한 고비용·저효율 산업이어서 삼성그룹의 입장에서는 큰 이익이 없는 분야이다.
일반 제품의 원가는 시장가격으로 결정되지만 방산물자의 원가는 실제 발생한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방위사업청이 보장하는 법적 최저 이윤율은 9%이다. 발생된 비용을 근거로 원가에 9% 이윤을 얹어주는 개념이지만, 방위사업청이 비용을 모두 인정해주지 않아 실제 이윤율은 그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이 업체들의 공통된 얘기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각종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보상이 없어 그런 부담까지 업체가 떠안다보니 이윤율이 떨어진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게다가 “방위산업은 북한의 위협 여부에 따라 진행 중인 사업을 조정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삼성그룹처럼 철저한 계획 하에 사업을 관리하는 기업으로서는 미래 설계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수정·보완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발전함에도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환경으로 인해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통할 첨단기술 개발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개발이 완료되면 미국처럼 단계적인 성능 개량을 거의 하지 않아 기술력을 쌓을 기회가 사라지고 생산 라인의 유지도 힘들어 진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들이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방위산업에서 철수하도록 마음을 굳히게 만든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단지 이윤율이 적고 사업관리 및 첨단기술 개발 등의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삼성그룹이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지 않고 방위산업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고비용-저효율’구조보다 ‘무리한’ 방산비리 잣대가 삼성의 포기를 만든 원인 분석
국내업체 방산원가 신고 의무화, 해외무기체계는 원가 몰라 비리 단초
방산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방산비리 수사의 여파’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지 관리에 매년 수천억 원씩 투자하고 윤리 경영을 실시하는 삼성그룹이 방산 비리의 대상처럼 인식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실 민수제품에서 평균 10% 이상의 이윤율을 기록하는 삼성그룹이 겨우 3~5%대의 이윤을 얻자고 ‘방산비리 업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방위산업에서 버티고 있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국내 방산업체들이 의도적으로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방산업체의 경우 매년 말 방산 원가를 방위사업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고, 회계자료 및 재무제표 등 사업기밀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이 자료들을 검토하여 허위사실이 발견되면 부정당 제재(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불이익을 주는 것)를 하고, 투입 금액을 환수한다. 게다가 이 자료들은 감사원이 다시 점검하고 국정원, 기무사 등 기관에서도 수시로 감사를 할 수 있다.
반면 해외에서 무기체계를 도입할 경우 방위사업청은 원가가 얼마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우리가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이니 한국 정부가 해외업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이들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기체계의 원가를 알 수 없으니 로비를 위해 막대한 자금이 풀릴 수 있고, 이 자금은 정·관계 등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더구나 해외에서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언론은 ‘해외 무기체계 도입 비리’가 아니라 ‘방산 비리’로 보도하고 있어 국내 방산업체들만 졸지에 비리 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방산비리 수사는 방위사업의 근원적 문제에는 접근도 못한 채 국내 방산업체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나쁘게 만들었고, 방산수출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그룹마저도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방위산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방위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일벌백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감사원을 이용하지 않고 ‘특명검열단’을 별도로 만들어 방위산업을 철저히 관리 감독한 이유를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때라는 지적이다.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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