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연설 도중 트럼프의 소개를 받고, 목발을 흔들면서 박수갈채에 답례하는 장애인 출신 탈북자 지성호씨
(안보팩트=송승종 대전대교수)
트럼프, 첫 국정연설서 북한을 정면 조준하면서 “최대의 압박전략” 지속 밝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 30일(현지시각), 하원 의사당에서 취임 후 첫 번째로 행한 상하원 합동형식의 국정연설에서 “안전하고 강력하고 자랑스러운 미국 건설(building a safe, strong, and proud America)”을 역설했다.
국정연설은 북한을 정면으로 조준하여 잔혹한 김정은 정권의 본질과 핵미사일 및 인권문제를 지적하며, “최대의 압박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연설과 연두교서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연두교서(Annual Message)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1790년 1월 당시, 임시 수도였던 뉴욕의 상원 본회의장에서 낭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낭독의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1801년~1912년 사이에는 서신을 통해 발표되었다. 대통령이 상·하원 의원들이 모두 집결한 의회에서 연설하는 전통은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부터 시작되었다.
연두교서는 예산교서(Budget Message) 및 경제교서(Economic Report)와 더불어 ‘3대 교서’로 불린다. 통상 미 의회의 회기가 새로 시작되는 1월말~2월초의 연두(年頭), 즉 새해 초반에 이뤄졌기 때문에 ‘연두교서’로 불렸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이것이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로 명칭이 바뀌었다.
중요한 국가행사 대비 ‘지정생존자’가 대통령 권한대행 맡아
미국에는 국정연설처럼 중요한 국가행사에 대비하여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 제도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대통령과 상·하원의원, 정부 각료들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에서 ‘불의의 참사’가 벌어지면 국가기능이 마비될 것을 우려하여, 지정생존자는 한시적인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을 맡는다.
그 사람은 행사에서 멀리 떨어진 군사시설 같은 곳에서 대통령에 준하는 삼엄한 경호를 받는다. 권한대행을 하는 동안에는 군 통수권자를 상징하는 ‘핵가방’도 같이 움직인다. 이 제도는 1980년대 냉전시절, 소련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시작되었다. 이번 2018년 국정연설에서는 소니 퍼듀(Sonny Perdue) 농림부장관이 지정생존자 임무를 수행했다.
전 세계를 향한 메시지나 정책 발표 기회에 트럼프 ‘치적 홍보’가 차지
국정연설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메시지나 정책을 발표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례로,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 ‘먼로주의’를 선언한 후부터 ‘고립주의’가 외교정책의 기조로 되었다. 2002년에는 부시(W)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북한-이라크-이란을 묶어 ‘악의 축(Axix of Evil)’으로 규정한 다음 해에 이라크를 침공하여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트럼프는 연설 초반에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총격 참사, 푸에르토리코와 텍사스-플로리다-루이지애나 등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하비(Harvey)’의 피해 같은 비극적인 사건·사고를 언급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이며,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함께 이 고난을 헤쳐 갈 것(we are with you, we love you, and we will pull through together)”이라고 역설하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그는 구체적 숫자들을 열거하며 재임기간에 달성한 치적을 자랑했다. 24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45년 만에 최저로 떨어진 실업률, 시가로 따지면 8조 달러가 넘는 사상 최고수준의 주식시장, 세제개혁으로 기업 법인세가 35%에서 21%로 인하되고, 300만 명의 근로자들에게 감세혜택 등등.
80분이 걸린 트럼프의 국정연설은 1960년대 이후 연설시간으로는 3번째로 길었다. 최고 기록은 클린턴 대통령의 89분이다. 80분 중에서 트럼프는 60분 동안 오로지 경제/일자리-이민문제-사회기반시설-무역 같은 국내문제만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것도 자기가 취임한 이후의 공적에 대한 ‘셀프 칭찬’이 대부분이었다.
“필적할 수 없는 압도적 힘이 확실한 방어수단” 역설하며 군사력 증강 예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는 강경노선이다. 그는 불량정권(북한·이란·쿠바 및 베네수엘라), 경쟁국가(중국·러시아) 및 테러집단을 가리켜 미국의 이익과 경제와 가치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필적할 수 없는 압도적 힘이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unmatched power is the surest means of our defense)”이라고 역설했다. 대대적인 군사력 증강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총 연설시간 80분 중, 남은 20분 동안에 무려 7분을 북한문제에 할애했으며, 연설 전체에서 북한을 7회 거론했다. 이란·중국 3회, 러시아와 쿠바·베네수엘라는 1회만 언급됐다. 결국, 미국은 북한을 최대의 안보위협으로 지목한 것이다.
국정연설에서 사용된 단어 숫자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475개 단어를 할애한 반면에 자신의 최대 공적 중 하나로 꼽은 이슬람국가(IS) 소탕에는 302개 단어만을 사용했다. 이란에 48개, 아프간에 34개 단어를 각각 할당한 것과도 확연히 비교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리한 창끝이 지향하는 ‘주적’은 결국 북한인 셈이다.
북한과 관련된 트럼프 국정연설은 크게 보아 2개로 구분된다. 하나는 북한정권의 본질과 핵미사일 문제, 다른 하나는 웜비어, 지성호로 대표되는 인권 문제다. 핵심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정권은 악랄하게 국민 억압, 핵미사일은 곧 미 본토를 위협" 강조
“잔학한 북한의 독재정권은 그 어느 정권보다 더 악랄하게 국민들을 억압한다. 북한의 무모한(reckless) 핵미사일 추구는 곧 미 본토를 위협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방지하려 최대의 압박전략(a campaign of maximum pressure)을 추진한다. 과거 경험의 교훈에 따르면, 안일함과 양보는 오직 침략과 도발을 불러올 뿐이다. 나는 미국을 이런 위험에 빠뜨린 과거 정권(역대 미 행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및 동맹국들에 가하는 핵위협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북한정권의 타락한 성격을 올바로 간파해야 한다.”
오토 웜비어의 부모, 세계를 겁박하는 북한 위협에 대한 강력한 증인 지적
“오토 웜비어는 버지니아 대학에 다니던 모범적이고 근면한 대학생이었다. 아시아에서 공부하러 가는 길에, 오토는 북한 여행에 합류했었다. 하지만 이 훌륭한 청년은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국가반역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작년 6월 말, 그가 부상을 당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북한은 웜비어를 미국으로 보냈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당신(웜비어 부모)은 전 세계를 겁박하는 위협에 대한 강력한 증인이며, 당신의 힘은 우리 모두를 고무케 한다. 오늘 밤 우리는 모든 미국인들의 결의와 더불어 오토의 죽음을 기념할 것을 서약한다.”
‘꽃제비’ 출신으로 장애인이 되어 탈북한 청년 ‘지성호’의 경험담 소개
“이 자리에는 북한 정권의 끔찍한 본질을 생생하게 경험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지성호다. 1996년 성호는 북한에서 굶주리던 소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음식과 바꾸려고 기차에서 약간의 석탄을 훔쳤다. 하지만 허기가 지나쳐, 그만 철길 위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절단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훗날 그는 중국을 잠시 방문하고 돌아온 뒤에 북한 당국에게 고문을 당했다. 고문하던 사람들은 그가 중국에서 기독교인들을 만났는지를 따져 물었다. 성호는 목발을 짚으며 수천마일을 지나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늘 그는 서울에서 살면서, 다른 탈북자들을 구하고,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진실’을 알리는 대북 방송을 하고 있다. 당신의 위대한 희생은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준다. 성호의 이야기는 자유 속에서 살고자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열망하는 생생한 증언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기대나 희망 표명없어,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 실종
사담 후세인 응징을 연상시키는 제한적 '예방전쟁'을 겨냥한 명분 축적의 흐름
국정연설의 어디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 바라거나 기대하는 어떠한 메시지도 발견되지 않는다.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북한의 태도가 변화할 것이라거나, 변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어떤 희망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대목에서 외교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사악함과 부도덕성을 부각시키고, 웜비어 부모와 지성호 같은 피해자들을 초대하여 미국 국민들의 도덕적 분노를 유도하는데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마치 2002년 부시(W)의 ‘악의 축’ 발언으로 사담 후세인에게 경고하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를 가리켜 많은 전문가들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는 이것을 ‘제거’해야 된다면서 전쟁을 일으키는데 써먹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트럼프는 지성호 같은 탈북자를 현장에 초청하여 북한의 잔학한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북한에게 인권문제는 ‘아킬레스의 건’이다. 인권문제를 본격 거론하면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사라질 것이다. 이는 미국이 대북문제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스스로 좁히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약하면, 트럼프의 국정연설에서는 빅터 차의 주한미국대사 낙마, 제한적 군사공격을 상징하는 ‘코피작전(Bloody Nose)’ 등과 더불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던 것과 동일하지는 않을지라도, 지극히 제한적 형태의 ‘예방전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명분축적’의 속내가 읽혀진다.
우리가 극구 반대하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인가?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그 답변은 ‘N0’이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특명전권대사인 주한미국 대사 후보자가 낙마한 것을 언론을 통해 알아야 할 정도라면, 이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