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주왕산의 바위, 폭포, 계곡 등이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운 절경이어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 지역 방위협의회를 비롯한 기관장 및 주민들과 긴밀한 협조 관계로 민·관·군 통합방위태세를 견고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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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6.09 09:50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어느덧 짧은 ‘94-1기 고급과정(대대장반)’이 절반을 넘어 한달정도 남겨둘 때인 3월말이 되었다.
교육기간 두달동안 각별하게 가까워진 룸메이트 정수완 동기는 교육종료 후에 다시 만나기가 힘드니 포항과 영덕 사이에 위치한 청하의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곳 인접에는 청송 주왕산이 있고 마침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상관으로 근무했던 차철이 선배가 대대장을 하고 있어 함께 찾아가기로 했다.
해발 721m인 청송 주왕산은 바위, 폭포, 계곡 등의 산세가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운 절경이어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중생대의 마지막 지질 시대인 백악기에 주왕산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 약 7천만년전 이 호수의 퇴적암층을 뚫고 엄청난 규모의 화산폭발이 최소 9차례 이상 있었는데, 뜨거운 화산재와 용암이 응집하면서 거대한 암벽이 형성됐고 이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오늘날의 수려한 모습이 되었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 때의 주도(周鍍)는 스스로를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자 멀리 한반도의 석병(주왕)산으로 피신했다. 나중에 주왕이 신라 땅에 숨어 들어간 것을 안 당나라에서는 그를 잡아달라고 신라에 요청했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형제들을 필두로 진압군을 이곳 석병산으로 보내 주왕과 그의 군사들을 격퇴했다.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패한 주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가리고 있는 주왕굴에 숨어들었다. 그러나 몰래 세수를 하러 나왔던 주왕은 그만 마장군의 낚시에 걸려 생포되어 당나라 장안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고도 하는 전설이 남아있다.
그외에 신라 시대의 원성왕(김경신)과 왕위 계승을 다투었던 김주원이 당시 이 산에서 군사를 이끌고 농성하여 그 이름을 따 주왕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제1폭포에 있는 급수대의 안내판에 김주원(金周元)이 김경신(金敬信)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에 대궐을 건립하였다고 적혀있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