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CrisisM] 독립운동가 최재형-최 엘레나 부부, 순국 100년만에 고국에서 해후(상)
순국 추정지인 러 우수리스크의 흙과 키르기스스탄 묘지에 안장된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와 국립서울현충원에 합장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국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하다가 일제 만행에 의해 불의의 객이되어 유해도 못 찾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일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모셔와, 원래 최재형 선생의 묘가 있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합장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되었으나, 이른바‘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되어 현재까지도 해당 묘역은 빈터로 남아있다.
이후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으나,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이에 국가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6월30일 국회 통과, 7월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18일 시행되었다.
이로써,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해 유해를 찾지 못한 최재형 선생을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 선생은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러일 전쟁 이후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재가 되어 항일의병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大恩人)’으로 추앙받았다.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3남 최 발렌틴과 5녀 최 올가의 회고에 따르면 1897년경 최재형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낳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하였으며, 안중근 의사 순국 이후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편인 최재형 선생의 순국 이후에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사망했고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국가보훈부는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에 돌입해, 오는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셨다.
또한, 최재형 선생이 순국하신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11일 국내로 반입해 부부를 최고의 예우로 국립묘지에 안장한다.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국내로 모시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7월 중순 키르기스스탄 현지에 의회 외교차 방문한 정우택 국회부의장의 협조 요청과 주키르기즈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의 도움, 기념사업회의 대국민 모금운동과 엘지(LG)유플러스의 후원 등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 적기에 가능해졌다. (다음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