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박정희 사진.png▲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시의 남유진 시장이 2017.12.1.금오산 호텔에서 개최된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 1970년 밝힌 '방위산업 구상' 실천하고 자주국방 위한 '핵 무기' 개발도 추진 

정통성 부족한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눈치 보면서 방위산업 축소, 이명박 대통령은 '방산비리 프레임' 씌워 방산업체 압박

북핵 위기 등으로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속 박정희식 방위산업 리더십과 결기 요구돼  

(안보팩트=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1970년 1월 국방부를 순시한 고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대한 구상을 밝힌다. 이 당시 “방위산업의 육성과 국방과학기술의 연구가 시급”함을 강조하고 “국방부에 방위산업 육성 전담부서를 설치하라”고 지시하면서 한국의 방위산업은 시작되었다.

그 해 4월 “민간업체의 산업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방위산업의 기반을 구축하되, 군 연구기관이 중심이 되어 사업을 관리한다”는 추진 전략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8월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창설되었고, 해외에서 우수한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도 했다.

1971년 11월 방위산업 추진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박대통령은 청와대에 방위산업을 관장할 경제 제2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하여 국방과학연구소에 지시한 초창기 무기개발 사업을 청와대가 직접 감독하고 통제했다.

박대통령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국방과학 연구소를 12번이나 공식 방문했다. 당시 근무했던 연구원들은 “항상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셨고, 시험장 건설 현장을 둘러볼 땐 일꾼들 먹는 임시 식당에 불쑥 들러 밥 한 그릇 달라고 하여 다들 놀랐으며, 식사 자리에서 ‘무기 만들어야 힘 있는 나라 된다’고 늘 말했다”고 회고했다.
 
박대통령은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개발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주었고,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여 이행 여부를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매년 1∼2회 대통령이 주재하는 방위산업 육성회의를 개최했다. 또한 당시 정부의 예산 규모로는 방위산업 지원이 힘들어 방위성금을 모금하고 방위세를 신설하기도 했다.

또한 박대통령은 사업의 필요성과 예산 집행을 일일이 따진 후에 결재했고, 1975년 최초로 감사원이 감사를 하게 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에 대한 감사관의 전문성이 부족한데다 군사기밀 유지에 취약한 점이 드러났다. 박대통령은 이를 보완하고자 군 특명검열단에게 방위사업을 감사하도록 지시했다. 
 
박대통령은 미국의 안보 공약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은밀하게 핵개발을 추진하기도 했다. 2005년에 공개된 미 CIA 보고서는 박대통령이 1974년 12월 핵무기 개발계획을 승인한 것으로 나와 있다. 박대통령의 의중을 알아차린 미국의 압박과 방위지원 약속이라는 반대급부로 인해 결국 핵개발은 계속 추진되지 못했다. 하지만 안보전문가들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안보적 자립을 추구하려던 박대통령의 결기만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은 점차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고, 당시 미국이 불편하게 여겼던 국방과학연구소의 핵·미사일 개발이 '타깃'이 되었다. 전대통령은 1978년 개발에 성공한 한국형 미사일 ‘백곰’을 엉터리라고 평가하면서 국방과학연구소를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연구 인력이 30%이상 줄어들었고, 미사일 개발부서를 포함하여 전체 부서 중 1/3 이상이 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그동안 성역처럼 존재하던 율곡사업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했다. 이회창 감사원장 지시로 시작된 감사원의 율곡사업 감사는 감사관의 전문성 부족으로 일부 잘못 지적된 부분도 있었지만 전직 국방장관과 해·공군총장의 뇌물수수가 밝혀지면서 율곡사업의 투명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도 전직 국방장관과 품질관리소장의 군납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방위사업에 대한 군 수뇌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방위사업청을 신설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위산업에서 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의 20%가 절감된다”는 말 한마디로 방산비리 프레임을 만들면서 국민들이 방위산업을 비리의 온상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 프레임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어지면서 무기 개발 과정에 결함만 발생해도 방산비리로 인식되어 방위산업 종사자들을 오늘 이 순간까지 힘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이 다른 대통령들은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키기보다 주로 감사나 비리 척결의 대상으로 접근했다. 그렇게 여길만한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간간이 발생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반면, 박대통령은 청와대가 방위사업의 컨트롤타워가 되어 구체적인 지침을 주고,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확인한 후 필요한 것을 찾아서 적극 지원함으로써 방위산업의 토대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와 같은 박대통령의 방위사업에 대한 남다른 리더십과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해온 방위산업 종사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은 전차, 자주포, 미사일, 함정, 잠수함, 고등훈련기까지 만드는 방위산업 강국이 되었다.

북한이 핵과 ICBM(대륙간탄도탄) 개발을 완성했다고 전 세계에 알리면서 미국과 우리에게 위협과 평화 공세를 펴고 있는 때다. 우리는 핵무기로부터 우리를 지킬 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전쟁은 안 된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다는 게 다수 국방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초창기 방위산업의 초석을 다지던 강력한 ‘리더십’과 안보의 자립을 위해 과감히 핵개발을 추진하던 ‘결기’가 다시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한경200.png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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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비리 대해부] ⑧ 방위산업 초석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결기’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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