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정상회담 준비.png▲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정은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과거와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탄생해야, 진의가 의심되는 상황 속 정상회담 추진

비핵화의 핵심인 CVID는 북한의 자발적인 협조가 전제되지 않는 한 사실상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목표에 불과

페리 전 미국방장관, "비핵화 합의를 하더라도 신뢰성 있게 검증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 경고

역대 미·북간 모든 핵합의는 검증의 문턱에 걸려 좌초, 북한이 이점을 노리고 국제사회에 거대한 덫을 놓은 정황 의심


(안보팩트=송승종 전문기자/대전대 교수)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상황이 숨 가쁘게 급진전되고 있다.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온 대북 특사단이 3월 6일 공개한 언론 발표문에 의하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특사단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고 전했다.

지난 16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4월말로 예정된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1차 준비회의를 갖고, 정상회담의 의제를 ① 한반도 비핵화, ②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③ 남북관계 진전 등으로 요약했다. 그 이튿날 한·미 정상의 전화 통화가 끝난 후, 백악관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이 한반도의 항구적 비핵화를 달성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이라는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남한과 미국에 보이는 태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김정은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과 작년 9월, 6차 핵실험을 도발한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리켜 “앉을 자리, 설자리도 모르고 헤덤비는 무지한 짓거리이고 그 누구에게도 통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잠꼬대”라고 비난했다. 또 “핵문제는 북남관계와 인연이 없다. 철두철미 우리(북한)와 미국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면서, “푼수없는 망동은 북남관계의 전도가 날을 따라 암담해지고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격화의 악순환 속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금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북한이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개꿈”이라고 조롱했었는데, 갑자기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어리둥절할 것이다.

비핵화란 무엇인가?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는 CVID이다.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의 약자인데, 이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말한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때부터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목표를 천명할 때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겉으로 보기에 명료하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CVID는 사실상 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이상적 목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CVID를 실현하려면 ① 북한 핵시설과 핵무기의 투명한 공개, ② IAEA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엄격한 사찰과 검증, ③ 핵시설 및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CVID의 첫 번째 난관은 북한이 보유한 핵시설과 핵무기를 숨김없이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을 비롯한 몇 명을 빼고는, 지구상 어느 누구도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량과 위치, 핵물질의 존재와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른다.

북한과 비핵화 논의를 시작하게 되면, 핵폭탄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뿐만 아니라 수소폭탄에 사용되는 리튬-6와 삼중수소, 이중수소 같은 물질들의 위치와 존재가 빠짐없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처럼 민감한 핵물질이 포함된 핵프로그램의 검증을 위해서는 당사자인 북한의 자발적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2008년 북한이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을 거부하면서 6자회담이 좌초되었다. 더욱이 문제는 영변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북한 핵활동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확인이 불가능한 비밀 시설/장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미 정보당국도 북한 핵활동의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지만 2008년 핵사찰이 중단된 이후 북한은 추가적 핵실험으로 핵능력 고도화를 달성한데다,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 미사일, 탐지가 곤란하고 은닉이 용이한 이동식 발사대, 비밀 터널 등을 개발 및 구축하여 사찰과 검증은 더욱 곤란한 상태다.

그래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 핵시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합의사항을 검증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설령 모든 핵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하더라도, “합의를 신뢰성있게 검증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이라고 경고했다.

요컨대, 북한의 간섭이나 제지를 받지 않고, 의심나는 지역이나 시설을 자유롭게 확인·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 비핵화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북한 핵시설 및 핵무기의 수량이나 위치는 고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국가의 생존에 직결되는 민감시설을 외부에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꿈’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덥석 김정은과의 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려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최고의 압박”을 추켜세운 한국과 일본의 공치사에 도취되어 북한이 압박을 못 견디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트럼프가 북한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다면, 한반도 안보정세는 예측이 불가능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역대 미·북간 모든 핵합의는 하나같이 검증의 문턱에 걸려 좌초되었다. 사실이지 완벽한 검증이란 우방국과 동맹국 사이라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다. 하물며 서로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에 대한 검증은 불신의 벽에 가로막히게 되어 있다. 정치적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검증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증을 가로막고 방해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바로 이점을 노리고 미국과 한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대한 덫을 놓은 정황으로 의심된다. 북한은 샅샅이 알고 있지만, 외부세계는 북핵 프로그램의 실체에 깜깜한 상태다.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으면서 협상 테이블로 상대방을 유인한다. 그런 다음 ‘핵시설 및 핵무기의 신고 및 공개’라는 CVID의 1단계에서 상대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어쨌거나 1단계가 그럭저럭 진행되면 대화는 ‘결렬’된 것이 아니다. 그런 다음 2단계의 사찰과 검증에서 본격적으로 상대를 지치게 만든다. 살라미처럼 잘게 2단계를 썰어가다 보면,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는 임기가 끝나고 다른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설 것이고, 인내력이 소진되어 기절 직전에 이른 일본과 한국은 ‘핵동결(nuclear freeze)’에 어쩔 수 없이 합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말하는 핵개발-경제발전의 ‘병진노선’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로써 김정은은 “인민의 허리띠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북한에게는 최선의 시나리오겠지만, 우리에게는 최악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비핵화’라는 단어에 우리 민족의 향후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비핵화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지켜봐야 할 때다.
송승종_200픽셀.jpg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송승종 대전대 교수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전체댓글 0

  • 7051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송승종 칼럼]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서 등장하게 될 북한 비핵화의 문제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