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북중.png▲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가운데)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오른쪽 가운데)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신화통신은 28일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공식 보도하면서 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부인 이설주와 함께 시진핑 중국 주석 부부만나 '정상국가' 이미지 부각

남북, 북미정상회담 구도 속에서 '전통적 혈맹'이라는 '중국 카드' 다시 획득해 트럼프 예봉 견제

'중국도 무시 못하는 지도자' 이미지 각인시켜 북한 체제 내부 단속 효과도 기대

김정은의 '정상회담' 퍼포먼스에 현혹되지 말고 '한반도 비핵화' 관철에 집중해야

(안보팩트=송승종 대전대 교수)

김정은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3.25~28일)은 앞으로 열릴 예정인 남·북 정상회담(4월말)과 미·북 정상회담(5월)에 심대한 전략적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나아가 이번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11월 김정일의 사망으로 3대째 세습권력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권력기반을 다지는 과정에서 2013년 장성택을 사형시킨 사건을 계기로 북한-중국 관계는 최근까지 급전직하의 형국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작년 11월 시진핑 주석이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냈지만, 김정은 만나주지도 않고 문전박대했다.  

중국은 김정은이 특사자격으로 보낸 김여정의 청와대 방문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결정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정상회담 요청을 수락하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3월 17일 당 대회에서 장기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시진핑은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이 북·중 정상회담보다 먼저 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북·중관계의 화해 분위기는 시진핑에 보낸 김정은의 축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3월 18일,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에 재선출된 시진핑에게 축전을 보냈다. 단 3개의 문장으로 된 축전이지만, 그 속에는 양국관계가 “두 나라 인민들의 공동의 이익에 맞게 발전”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했겠지만, 김정은의 축전에 대하여 중국은 의미심장한 제스처를 보였다. 중국의 관영매체 「차이나 데일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전 세계 정상들이 보낸 축전들 중에서 김정은의 축전을 맨 먼저 소개했다. 한국 언론은 부주의하게도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보낸 답신도 소개하지 않았다. 되레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보낸 축전이 과거보다 “대폭” 줄어든 3문장에 불과하다는 것만 부각시켰다.

시진핑은 답신에서 양측이 “양국의 당(공산당)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지역 평화와 안정 및 공동번영을 수호”하는데 함께 기여하자는 희망을 내비쳤다. 시진핑의 답신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역 평화와 안정”을 의미하는 북한 비핵화 이슈의 해결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번 시진핑-김정은 회담은 북한이 답신에 담긴 암호를 제대로 해석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이번의 북경 방문에서 얻으려 했던 노림수는 무엇인가?

첫째, 부부동반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북한이 깡패국가(rogue state)가 아니라 ‘정상국가’라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부인(리설주)은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미·북 정상회담에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해 외교 경험이 일천한 김정은이 처음으로 외국의 정상과 만남으로써 국제무대에 데뷔한 의미도 있다.

둘째, 전통적인 북·중 동맹관계의 복원이다. 김정은은 “첫 외국 방문의 발걸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가 된 것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라며 이를 가리켜 “조·중 친선을 대를 이어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이어 나가야 할 숭고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북한은 중국이 은근히 갖고 있던 ‘차이나 패싱’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켜준 셈이다.

셋째, 중국 카드를 활용하여 트럼프의 예봉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폼페오 CIA 국장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발탁으로,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고강도 압박의 지속과 동시에, “비핵화냐? 아니면 전쟁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할 속셈인 것을 간파하고, 전가의 보도 같은 ‘중국 카드’를 빼든 것이다. 김정은의 배후에 병풍처럼 드리운 시진핑의 그림자는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에게 천군만마 이상의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넷째, 국내 정권기반의 공고화다.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라지만 난데없이 한꺼번에 한국-미국 등과 김정은이 정상회담에 나서고, 주제도 ‘비핵화’라는 것이 인민들에게 알려지면 사회적 동요의 원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국제적 제재국면에서 인민들의 삶도 갈수록 고단해지고 있다. 자칫,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집안단속이 소홀하면 외부로 눈을 돌리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양발을 지긋이 벌린 김정은이 두 다리를 얌전히 모은 시진핑과 부부동반으로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은연중에 “중국 주석도 무시하지 못할 우리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 내부 단속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요컨대,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향후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더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남·북·미 3국의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단 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이 쾌도난마식으로 일거에 북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청와대의 그랜드 디자인에 차질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미국이 이런 구상에 선뜻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처 계산에 넣어두지 않았던 중국 변수가 돌출하여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판단에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겨냥한 ‘최고의 압박’에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중국이 제재국면에 ‘뒷구멍’을 열어주는 순간 ‘최고의 압박’은 구호에 그치게 될 것이다. 김정은의 방중은 갈수록 대북 제재·압박이 어려워질 것임을 강력히 암시한다.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 노력에 응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는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비핵화가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는 판에 박힌 스토리도 반복했다.

이런 발언의 속내를 짚어보면, 한·미가 생각하는 CVID(완전하고, 불가역적이고, 검증가능하고 완전한 핵폐기) 식의 비핵화는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인다. 한·미가 보여야 할 “선의”는 무엇을 말하고, 김정인이 언급한 “단계”는 무엇이며, 그동안 숱하게 반복한 “유훈”이란 것은 또 무엇을 말한다는 것인가? 한·미에게 내보이라고 하는 “선의”의 보따리 속에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제재조치 완화 및 중단, 테러국가 지정 해제, 주한미군 철수 등등 온갖 선물들이 다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그 “단계”라는 것이 2개인지, 3개인지, 10개인지, 아니면 100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의 단계가 지날 때마다 협상과 대화는 계속될 것이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군사적 옵션의 명분도 사라질 뿐 아니라, 제재 및 압박의 당위성도 갈수록 희석될 것이다.

아마도 김정은의 진정한 노림수는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 시간을 끌어 트럼프 행정부의 칼날을 피해보려는 건 아닐까? 이런 면에서 중국과 북한은 기막힌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일당독재 국가에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구축한 시진핑은 직업이 “지도자”인 김정은과 참으로 오랫동안 권좌에 눌러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앞으로도 까마득한 세월동안 집권할 수 있는 시진핑-김정은 듀오가 기껏해야 3년 남짓 남은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동안 “비핵화 협상” 어쩌고 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로 작정한다면? 그렇다면 시간은 단연코 트럼프 편이 아닐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변수가 또 하나 남아 있다. 거대한 체스판에 끼어들려고 안달이 난 아베 총리는 그렇다 해도 “스파이 독살”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푸틴의 행보가 궁금하다. 그도 역시 사이비 선거로 1인 독재와 장기집권의 채비를 마쳤다는 점에서 시진핑-김정은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상기의 전략적 계산에 의하면, 김정은-푸틴 간 정상회담이 남·북 또는 미·북 정상회담 전에 열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아마도 이것이 김정은 정권이 숨겨 놓은 깜짝 쇼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은의 정상회담 퍼포먼스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대한민국의 생존은 더욱 위험해 질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북한 비핵화라는 절체절명의 핵심적 주제에서 절대로 한눈을 팔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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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송승종 대전대 교수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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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김정은 중국 방문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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