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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14)] 5·16 가신(家臣) 차지철과 고독한 황태자(상)

: 2024.05.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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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혁명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우측 차지철 대위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차지철은 1934년 11월, 경기도 이천에서 아버지 차수찬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고 한때 경기도 파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에서 성장하였고 1953년에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 13기에 지원하였으나 낙방하였고, 1954년 7월에 육군 갑종장교 포병 간부후보생을 통해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보·포병 병과를 학습하였으며 의외로 미국에서 육군포병학교를 수료하였다. 1959년에 육군 공수특전단에 배치되었다가 1960년에 미국으로 가서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레인저스쿨도 수료하였다.  


이듬해인 1961년 공수특전단 예하 중대장의 신분으로 박정희가 주축을 구성한 5.16 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했다. 쿠데타의 성공 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전속부관으로 발탁되며 최고회의 의장 경호실 차장이 되었고, 1962년 3월, 육군 소령 진급에 이어 1962년 5월31일, 육군 중령 특진하여 석 달 뒤인 1962년 8월에 전역했다.  


그 해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고, 한양대학교에서 1966년에 석사 학위를, 1970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어서 계속 공화당 국회의원직을 유지했다. 그 후에는 국회 외무국방위원장까지 지내며 국회에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차지철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후보에 출마하였지만 결국 낙선되었으며, 2년 뒤인 1974년에는 영부인 육영수 저격사건으로 자진 사퇴한 박종규의 후임으로 제3대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었다. 이후 대통령 경호를 명분으로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각종 월권을 행사하여 주변의 원성을 샀다. 


1976년에 이철승을 매수해서 신민당을 어용야당화 시키려는 공작을 했으나 신민당 총재가 이철승이 아닌 김영삼이 선출되자 이철승과 같이 조직폭력배 서방파 두목인 김태촌을 시켜 김영삼을 기습했다.  


이에 김영삼은 3층 창문으로 뛰어내려 부상을 당하면서 도망친 뒤 맞불작전으로 본인도 조직폭력배를 고용하여 이철승을 공격하는 신민당 각목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1979년 10·26사건 현장에 있었던 경호실장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운명을 달리한 박 대통령의 5·16가신(家臣)이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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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7]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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