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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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4공화국에서의 한 장면 [사진=동영상 캡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5.16 군사혁명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신(家臣) 역할을 계속해온 차지철은 1974년부터는 경호실장으로 가장 근접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하며 각종 월권을 행사하여 주변의 원성을 샀는데,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사람은 김영삼 등의 정치인들이 아니라 1977년에 육사에 입교한 바로 비운의 고독한 황태자 박지만 생도였다. 


박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어 주변을 차단하며 모든 보고를 독점했던 차지철은 육사생도 박지만의 활동도 수시로 대통령께 보고했다. 특이한 것은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잘하고 있는 것보다는 약간의 일탈을 주로 보고해 대통령의 아들로 혜택을 받기보다는 더욱 외로워지고 힘들었다고 한다. 


간단한 실제 사례로 외출시에 친분이 있었던 사회 친구들을 만나 밤새 스트레스를 풀고 나면, 차지철 실장은  바로 그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박 생도와 만난 다음날 당시 재벌 및 고위 직책의 자제들 10명을 바로 특전사로 입대시켰다. 


이런한 조치로 비운의 황태자는 친구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박 대통령에게 죽도로 맞는 드라마까지 방영되었는데 같은 방의 동기생은 그날 등과 엉덩이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확인할 정도로 그는 더욱 힘들고 고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박지만과 절친이었던 한 동기생의 전언에 따르면 생도시절 박지만 생도는 모든 훈련에 열외하지 않고 똑같이 참여하며 상당히 인내심도 강하게 평범한 생도 생활을 했는데,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1953년 10월, 서울대 법대 법학과를 중퇴하고 1954년 육군사관학교로 재입학)을 비교하며 뭇 선배들이 많이 괴롭혔다고 했다. 


박 생도를 보호하려는 훈육관들이 자정 넘어 퇴근하면 이후 심야에 상급 생도들은 주변의 동기들과 함께 수시로 불러내 얼차려를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 등으로 육사 37기들은 유별나게도 덩달아 많이 힘들게 생도생활을 했으며 덕분에 1년 후배들은 오히려 편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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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28] 독불장군 경호실장과 고독한 황태자의 신경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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