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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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무장공비 침투시에 투입준비중인 아군 수색조 모습 [사진=동영상캡쳐]

 

[시큐리티팩트=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강원도를 담당한 36사단을 비롯한 인근 육군 보병사단과 해당 지역 동원예비군은 물론 최정예 특수전 전력인 특전사 병력도 상당수 투입되었다. 필자의 부대는 강원도와 인접한 단양, 제천지역만 좀 더 강화된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확전에 대비했다. 


해군 역시 1함대와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함정 23척 지원은 물론 지상전력으로 제1해병사단에서 출동한 수색대 및 보병 병력을 동원했으며 해군 특수전전단 병력도 진해 및 동해에서 급파해 동원했다. 공군에서는 18전투비행단과 공군작전사령부에서 항공기 76소티 지원 등이 있었다.  


일일 지상작전 투입병력 평균 4만 3000여명, 연인원 총 150만명에 달하는 육·해·공 대규모 작전이 전개되었고, 경찰청도 전투경찰들로 구성된 타격대와 기동대 등을 대거 투입하였으며 파출소 근무 경찰관도 기동복을 입고 M16 소총을 휴대했다.  


이 때 이광수 체포조 등 일부 경찰들이 M1 카빈소총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찰청은 급히 경찰 내 K2 소총들을 긁어모아 강원지방경찰청 산하에 급히 뿌려서 교체해 주었고, 이로써 본의 아니게 강원청은 전국 지방청들 중 K2소총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이후 9월18일~30일에 걸쳐 차단선을 구축하였고, 곧이어 남은 북측 공비들에 대한 아군의 수색 및 섬멸 작전이 전개됐다. 


9월19일. 칠성산 일대에서 주민 신고로 출동한 특전사 3여단 병력이 적 3명과 접촉하였다. 공비들은 투항유도에 불응하였고, 전원 사살되었다. 이날 16시경에는 괘방산 오이골 110m 고지 일대에서 X사단 병력과 교전하여 일병 박정운이 적 1명 사살. 해당 공비는 신원 미상의 3명의 정찰조원 중 정찰조장이었다. 


이후 무장공비침투 49일째인 11월5일 6시48분 경, 정보분석조와 합동신문조가 교전 현장 일대에 도착하여 작전을 토의하던 중 직접 현장으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때 부하 장교가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3군단 기무부대장 오영안 대령은 강행하여 올라갔다.  


현장을 살피던 도중 기무부대장이 적의 예상도주로를 향해 불을 비춘 순간 그곳에 숨어있던 적의 저격으로 오 대령을 포함한 간부와 병사들이 사상당한다. 몇 분 뒤 부상을 당한 병력 후송을 위해 이동 중이던 의무 병이 무장공비 사격으로 부상을 당하였으며, 이를 구출하기 위해 추가로 이동하던 정보장교(서형원대위)가 전사. 이로써 기무대장 오 대령을 포함한 아군 전사 2명, 부상 8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날 7시~9시 경, 특공연대가 퇴로를 차단하고 압박 작전을 펼쳤으나 안개속에서 계속된 적의 조준 사격으로 아군 피해 누적. 1명 전사, 6명 부상으로 이날 교전 중 총 3명이 전사하고 14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10시 경, 아군의 압박작전 속에 특전사 3여단의 장선용 상사가 배후에서 접근하여 마지막 무장공비인 정찰조원 2명을 사살시킴으로써 길었던 대투침작전은 개시 49일만에 종료됐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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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사용설명서(464]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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