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9(월)
 
채명신사진.png▲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 사병 묘역에 최초로 묻힌 채명신 장군의 묘지 모습
 

한국은 묘지면적과 안장방식을 계급에 따라 차등 적용하나, 미국과 영국 등은 계급 구분 없이 동일

채명신 장군,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건군 이후 최초로 장군묘역 대신 사병묘역 안장

한국도 계급 구분 없이 동일 적용으로 법이 제정됐으나, 장군묘역 소진 때까지 법 적용 유보 아쉬워

(안보팩트=김한경 총괄 에디터)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계급에 따라 장군, 장교, 사병 묘역이 구분되어 있다. 장군의 묘지는 26.4㎡(8평) 규모로 시신을 안장하고 봉분을 조성할 수 있지만, 대령이하 장교와 사병들의 묘지는 3.3㎡(1평) 크기로 화장한 유골만 안장한다. 이 때문에 죽어서도 차별을 당한다는 얘기가 간간히 나오기도 했다.
 
반면,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장군, 장교, 사병 묘역의 구분이 없고, 묘지 면적도 동일하게 4.49㎡이다. 안장은 계급의 구분 없이 사망일시 순서에 따르며, 사망일시가 같을 때에는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른다. 영국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같은 영연방 국가들의 국립묘지도 계급 구분 없이 묘지 면적이 모두 4.95㎡로 동일하다.

이와 같은 영·미의 전통에 대해 한 전쟁사학자는 “계급이란 전쟁 수행을 위해 필요했던 직책에 대한 표시였지 신분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전쟁을 많이 치룬 나라일수록 장군과 사병 관계가 부하보다 전우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면서 국립묘지에 묻힐 때 모두가 동등한 이유를 설명했다.

2013년 11월 25일 베트남전 당시 초대 한국군사령관을 역임했던 채명신 장군이 별세했다. 채 장군은 평소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것이 유언으로 받아들여져 장군 묘역 대신 사병 묘역에 안장됐다. 건군 이후 장군 출신이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채 장군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채 장군은 살아서는 ‘전쟁 영웅’으로, 죽어서는 ‘참 군인’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인 미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 또한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해군들이 가장 많이 잠들어있는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도 채명신 장군처럼 옛 전우들과 함께 있고 싶어 미국을 대표하는 알링턴 국립묘지보다 다른 곳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장군 묘역이 조성된 것은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4년이 최초로 한국전쟁 직후 군의 중요성이 매우 부각되던 시기였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1966년 제2장군 묘역이 만들어졌고,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1년 제3장군 묘역이 생겼다. 군부정권 시절 장군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장군 묘역의 시신 안장과 봉분 조성은 제5공화국의 잔재다. 1965년 국립묘지령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국가원수 외에는 모두 화장을 원칙으로 했다. 하지만 1983년 장군들도 시신을 안장할 수 있도록 규정이 신설됐다. 2004년 국방부는 “장군 묘역도 화장 후 유골 안치를 추진하고 봉분 조성은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7월에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장군 묘역의 화장 안치 및 1기 면적을 3.3㎡으로 명문화했다. 하지만 부칙에 ‘장군 묘역이 소진될 때까지 시신 매장 및 26.4㎡ 허용’이라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서울현충원은 1996년 장군 묘역이 소진되었지만 대전현충원은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330만㎡ 규모의 대전현충원도 묘지 면적의 83.6%가 안장이 완료된 상태다. 지난 5월 28일 대전현충원은 새로이 11만 5,200㎡ 규모의 제 7묘역을 준공했다. 마지막으로 조성된 묘지 면적으로 더 이상 안장할 자리가 없어 조만간 납골당을 건립할 예정이란다. 국립묘지 안장기간은 60년이다. 
 
국립묘지조차 계급으로 구분했던 과거의 군인들은 채명신 장군이 깨우쳐준 의미를 뒤늦게나마 되새겨야 한다. 전쟁터에서는 한솥밥을 먹으면서 생사를 함께했건만, 세상을 떠나면서 장군은 1등 칸에 특별하게, 나머지 군인들은 3등 칸에 소박하게 묻힌다. 수많은 전우들에게 소외감을 주고 자신만 편안함을 취하는 듯한 이 모습은 지휘관이 취할 도리나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지휘관을 과연 어느 부하가 따를 것인가?

2005년 당시 법률을 제정하면서 계급에 관계없이 묘지 면적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정했다면 굳이 부칙을 달아서 그 혜택을 계속 누려야 했을까? 대전현충원마저 묘지 면적이 부족하여 납골당을 건립할 상황이라는데, 장군 묘역은 아직 95위의 자리가 남아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현충일을 앞두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국립묘지는 채명신 장군처럼 전우를 생각하는 장군이 더욱 빛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김한경200.png

안보팩트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외래교수 (공학박사)
광운대 방위사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장
한국방위산업학회/사이버군협회 이사
前 美 조지타운대 비즈니스스쿨 객원연구원

김한경 방산/사이버 총괄 에디터 겸 연구소장 기자 khopes58@securityfact.co.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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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시선] 사병 묘역을 선택한 채명신 장군이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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