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큐리티팩트=김철민 기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5일(현지시간) 새벽 워싱턴서 평양으로 출발, 1박 2일 북한 체류
미 당국, 이례적으로 폼페이오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면담 일정 공개
김정은 위원장과 6일 늦은 오후부터 7일 오전까지 비핵화 협상
美 국무부 출입기자 6명 동행…미군 유해송환 이벤트 주목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박 2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북한 비핵화 문제를 협의한다. 이 자리에서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개괄적인 합의가 도출될지에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인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회의적 여론이 급등하는 등 한반도 평화전선에 이상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압박전략’보다는 ‘유화전략’으로 선회함에 따라 조급하게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의 목표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유화전략의 입장에서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6·12 북미정상회담 후속협상을 위해 5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워싱턴DC를 출발, 평양으로 향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이로써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둘러싼 북미 고위급 담판이 '2라운드'의 막을 올렸다. AFP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과 국무부 고위급 참모들을 포함한 방북단 일행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전 2시께 워싱턴을 출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6일 평양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게 된다고 AFP는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로, 현지에서 숙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북미정상회담 이전이었던 지난 1, 2차 방북은 당일치기 방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인사들과 만나 지난 주말 사이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미간 탐색전 결과를 토대로 후속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AFP는 6일 늦은 오후부터 7일 오전까지 협상이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 계획을 비롯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이 사전에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하고, 특히 최대 쟁점인 '핵 신고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 북측의 답변을 받아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북에는 미국 국무부 출입 기자 6명도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5월 9일 두 번째 방북 당시에도 워싱턴포스트와 AP통신 2개사 기자들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간 뒤, 당시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을 석방시켜 나오면서 이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기간 맞춰 북한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를 미국 측에 인도하고, 이 과정 역시 동행한 외신 기자단을 통해 중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은 국무장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의 일환이기도 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에 이어 7일부터 8일까지 일본 도쿄를 방문,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를 갖고 방북 성과를 설명한 뒤 후속 절차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8일부터 이틀간 베트남을, 9일부터 이틀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뒤 10일부터 12일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로이터통신, "폼페이오는 핵 감축을 위한 로드맵 합의를 희망하지만 '올 오어 낫싱'식의 접근법은 접어 둬“
트럼프 행정부, 비핵화 목표를 CVID에서 FFVD로 변경해 북한 자존심 살려
한국 정부의 단계적 접근법 조언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변화에 영향 미쳐
미국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와 관련, 한층 유연해진 접근법을 구사하려는 모양새이다. 본격화하는 6·12 북미정상회담의 후속협상 국면에서 비핵화의 입구를 열고자 기존의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올 오어 낫싱)식의 강경 드라이브에서 한발 물러나 판이 깨지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면서 현실적인 접근으로 실리를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미국이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북한 방문을 통해 핵 감축을 위한 로드맵 합의를 희망하는 가운데 '올 오어 낫싱'식의 접근법은 접어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이러한 전술 변화는 북한이 싱가포르 회담에서의 비핵화 약속에도 불구, 그 이후 핵무기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언제 포기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 당국자들은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구체화하고 구체적 비핵화 경로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 진행돼왔지만, 아직 실질적 돌파구를 위한 징후는 감지되지 않았으며 비핵화 관련 핵심용어들에 대한 정의에서도 진전이 별로 없다고 익명을 전제로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지난 주말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미 간 접촉에서도 북한 측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포함, 최종 합의문에 담을 핵심용어들을 규정하려는 미국 측 시도에 반응을 보이길 대체로 거부했다고 한 당국자는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과의 협상 상황에 대해 "구부리느냐 아니면 깨뜨리느냐의 선택"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조야에서 핵무기·시설 은폐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는 등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둘러싼 회의론이 계속 고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측의 이러한 스탠스를 고려해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완화하는 기조를 보인다는 것이다.실제 지난 판문점 접촉 이후 국무부가 비핵화의 목표를 기존의 CVID 대신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로 재정립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라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그동안 북한 측은 패전국이나 쓸법한 '항복문서'라며 CVID라는 용어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이 CVID에서 FFVD로 한발 물러나는 과정에는 양보를 얻어내기에 앞서 미국 측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라고 북한을 압박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보다는 단계적 협상의 승산이 더 크다는 한국 측의 조언도 있었다고 두 명의 미국 관료가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이와 관련, 한국의 한 당국자는 지난달 워싱턴 DC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 당국자들에게 정권교체로 귀결될 수도 있는 일방적인 군축 방안이라고 북한이 인식하는 CVID를 계속 요구하는 대신 '상호 위협 감소'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고 당시 대화 내용을 잘 아는 소식통이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 한국 당국자는 북한 측이 난색을 표명할 수 있는 만큼, 수백 명의 조사관이 현지에 들어가는 관례적인 핵 사찰방식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피력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러한 변화에는 '올 오어 낫싱' 식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계속 구하는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현실인식도 작용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화염과 분노'는 더이상 없다: 북한에 대해 더 부드러워진 트럼프 대통령의 어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와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NYT는 1년 전 북한이 미 대륙에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쐈을 때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북한을 위협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6·12 북미정상회담 180도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몇주간 트럼프 정부는 CVID라는 용어를 언급하지도 않았고, 폼페이오 장관 역시 어조를 누그러뜨렸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트위터로 "내가 아니었으면 전쟁이 났을 것"이라는 식으로 북미정상회담 성과를 '세일즈'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NYT는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로 태도를 바꿀 준비가 돼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시간만 벌고 있는 것인지가 가장 큰 의문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핵 능력을 유지하며 이를 자신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려 하고 있으며, 언제든 핵실험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3차 방북길에 오르는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 시간표와 6·12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북미공동의 이해를 구체화하는 임무를 안게 될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자화자찬하며 스스로 '열광'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분위기를 차분히 누그러뜨리고 회담 합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검증가능한 협정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폼페이오 장관의 몫이 됐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최근 미 언론에 잇따라 보도된 북한 핵 은폐설로 북미회담 회의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핵무기, 미사일, 생산시설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한·미·일에 확실히 보장할 사찰 체계를 확보해야한다고 NYT는 강조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 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 안보소장은 로이터에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곧바로 포기하기를 원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주요 부분은 흔쾌히 해체하려 할 수도 있다"며 "이에 따라 미국은 김정은이 몇 달 내에 어느 정도의 프로그램을 해체하려고 할지 탐색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는) 일부 용어를 쓰지 않는 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워싱턴은 이 시점에서 흔쾌히 그렇게 할 의향이 있어 보인다"며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주요 요소들에 대한 '검증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인 만큼 워싱턴은 조용히 (CVID 대신) FFVD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설령 협상 당사자들이 마음속으로는 서로 다른 목표가 있더라도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합의에 이르게 하는 공간을 그만큼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 1일 '핵 등 대량파괴무기(WMD)+미사일 1년내 폐기' 시한을 제시하며 대북 압박에 나선 반면, 협상대표인 폼페이오 장관이 이끄는 국무부는 3일 구체적 시간표 제시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북한을 공개적으로 압박하지 않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