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정상회담1.png▲ 16일 헬싱키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 ⓒ 연합뉴스
 
회담 후 “미 정보기관과 푸틴 중 누구를 믿느냐”는 기자 질문에 푸틴 손 들어줘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언론과 정치인들 비난, 한 때 ‘반역’이란 단어 검색어 1위

지지층의 결속력은 물의를 일으킨 후 더욱 단단해져...국민신뢰 회복은 어려울 듯

(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미국 사회가 때 아닌 ‘반역(treason)’ 논쟁에 휩싸였다. 이번에도 논란의 중심에 트럼프 대통령이 우뚝 서 있다. 7월 16일(현지시각), 헬싱키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발언이 사단을 일으켰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푸틴을 믿는가? 아니면 미국 정보기관을 믿는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는 대 놓고 푸틴의 손을 들어주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명색이 미국 대통령이란 사람이 자국 정보기관보다 적대국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모습에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당연히 푸틴은 “러시아는 절대로 미국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기다렸다는 듯이, “푸틴은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며 거들고 나섰다. 그 순간만 놓고 보면 트럼프는 영락없이 푸틴의 대변인 또는 하수인 노릇을 한 것이다.

또 러시아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뮬러 특검팀을 겨냥하여, 수사대상 중 최고위급인 트럼프는 특검의 수사를 재앙이라고 질타했다. 게다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서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경고하겠는가?”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느닷없이 “왜 FBI는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를 수사하지 않는가?”라며 화살을 엉뚱하게 FBI에게로 돌렸다. 자국의 범죄수사기관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대통령은 아마도 트럼프가 유일할 것이다.

이처럼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버릇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트럼프는 러시아보다는 NATO 동맹국들을 비난하고, 북한 비핵화 협상의 와중에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이 적다고 돈타령하며 불평하고, 최고의 동맹국이라고 치켜세우던 일본에게도 마구잡이로 관세폭탄을 투하하는 것이다.

같은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발언을 ‘수치’라고 표현했고, 트럼프에 매우 우호적인 폭스뉴스마저 “그의 회견은 구역질난다”고 날을 세웠다. CNN도 이날의 미국-러시아 정상회담을 ‘항복 회담’이라고 부르고, 영국의 Mirror지는 그를 “푸틴의 푸들 강아지”라는 1면 머리기사를 올리는가 하면, 이태리의 La República는 “미국 정보기관은 반역자”라며 조롱했다.

언론매체들의 反트럼프 논조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지만, 미국 국내의 상황은 과거와 다른 측면에서 자못 심각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의 대선개입 의혹을 문제 삼지 않고, 되레 푸틴에 아첨성 발언을 늘어놓은 트럼프의 기행을 놓고 바야흐로 미국 내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 직후 인터넷 사전에서 ‘반역(treason)’이라는 특정 단어가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다른 언론매체들은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반역자(traitor)”라는 해시태그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비뚤어진 인격의 소유자인 트럼프가 “미합중국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지킬 것”이라는 엄숙한 선서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위반한 대통령이라고 지목하면서, 이는 ‘반역행위’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CIA 국장을 지낸 존 브레넌 또한 헬싱키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언행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국 헌법은 반역(treason)의 개념을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다. 연방헌법 제3조 3항에 의하면 “미국에 대한(against) 반역이라 함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거나, 적들에게 가담하여, 이들에게 구호(救護) 및 원조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미국을 상대로 전쟁 행위를 벌이거나, 적과 공모하여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한, ‘반역’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또한 대통령/부통령 및 연방 공무원들에 대한 탄핵의 법률적 기초를 제공하는 연방헌법 제3조 4항에 의하면, 탄핵사유는 “국가 반역, 뇌물수수(受賂) 및 여타 중대범죄와 과실(過失)”이다. 미 헌법 제정자들(Founding Fathers)은 “중대범죄 및 과실”의 범위도 엄격하게 규정해 놓았다.

1974년 당시 예일 법대의 찰스 블랙 교수의 해석에 의하면 이런 행위가 성립되려면 “(1) 극도로 심각하고, (2) 정치적 과정 또는 정부의 통치절차를 부패 또는 전복시키는 정도에 해당되며, (3) 선량한 시민의 입장에서 명백하게 잘못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등, 하나같이 추상적인 3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요컨대, 트럼프가 헬싱키에서 연출한 무능하고 너절한 행위는 그 자체가 조롱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지언정, 헌법상의 탄핵 또는 ‘반역’의 구성사유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트럼프가 자신의 수치스러운 발언을 합리화하려고 횡설수설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도무지 실수나 과오, 또는 실패를 인정하는 법이 없는 트럼프는 이번에도 여러 변명을 나열하며 궁지를 벗어나려 했다. 그는 자신이 “러시아가 그럴 이유가 없다(I don’t see any reason why it would be)”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러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I don’t see any reason why it wouldn’t be Russia)”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게 실수였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not(n’t)”이란 단어를 깜빡 빼먹는 바람에 자신이 정작 전달하려는 의미가 정반대로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백악관 회의석상에서, 횡설수설처럼 들리는 구차한 변명의 ‘진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되어선지, 그 대목을 몇 차례나 힘을 주어 반복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트럼프의 길지 않은 재임 기간 동안, 그의 실언, 착각, 또는 진실과 거리가 먼 발언(혹은 거짓말) 등은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경악할만한(sensational)” 것처럼 보였던 행동도 동일한 인물이 날마다 저지르다보니 충격의 강도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드러난 놀라운 사실은 트럼프 지지층의 결속력이 돌출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후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지지층의 공유된 위기의식이 오히려 그의 지지율 반등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이 맞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다른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도 있다. 전자는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연상시키는 반면, 후자는 ‘누적적 충격의 치명성’을 경고한다. 트럼프에게 어떤 속담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도덕성과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것 같다. 특히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곧이들리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송승종_200픽셀.jpg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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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트럼프 대통령은 ‘반역자(traitor)’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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