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당국, 북한이 사찰단 검증 회피방안을 논의하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핵·미사일 시험 중단, 제조시설 폐쇄 퍼포먼스, 일부 핵·미사일 폐기 조합이 북한 비핵화
트럼프 대통령, "미국의 능력 한계 모른 채 북한에 무지했다"는 평가 받아
(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AP와 AFP 통신,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유엔의 전문가패널(a panel of experts)이 8월 3일(이하, 현지시각) 안보리에 제출한 62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고 적시해 파장이 일고 있다.
WP는 미국 정보기관인 국립지리정보국(National Geospatial-Intelligence Agency)이 몇 주일에 걸쳐 촬영한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평양 외곽 산음동 일대에 소재한 핵·미사일 연구단지에서 최소한 2발의 액체연료 ICBM을 제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난 7월 30일 보도했다. 그 중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와 핵 탑재 능력을 갖춘 ‘화성15호’ 미사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미 정보기관이 입수한 최신 영상자료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확장 또는 확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 위협은 더 이상 없다(no longer a Nuclear Threat)”는 트위터를 날린 이후에도 핵·미사일 개발이 지속됨을 의미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상기 보도는 북한이 영변 핵 단지 외에도, 평양 인근의 천리마 구역으로 알려진 강선(Kangson)에서 2000년 초반부터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운용하고 있었다는 의혹에 잇따라 터져 나왔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위한 “핵분열 물질 생산을 지속 중”이라고 증언했다.
나아가 미 정보당국은 북한 관료들이 핵탄두와 미사일의 수량과 종류, 핵·미사일 제조시설의 위치와 숫자를 속이고, 국제기구 사찰단의 검증을 피하는 방안을 활발히 논의하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기본전략은 예컨대 약 20발 정도의 핵탄두와 미사일을 완전히 해체한 증거를 내보인 다음, 상당량의 핵·미사일을 은닉한 상태에서 “비핵화 종료”를 선언하고 미국의 “결단”을 압박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7월 25일부터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위치한 「서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이란 것을 폐쇄하는 듯한 ‘소동’을 벌이고 있다. 그에 앞서 5월에는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폭파하는 ‘쇼’를 연출했다. 그리고는 이를 비핵화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실질적 제스처라며 미국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시설은 불과 수개월이면 복구하여 완전한 성능 발휘가 가능하다. 결국, 상기 시설들의 폐쇄가 북한의 핵·미사일 생산능력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미국 내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① 정권 생존, ② 김씨 일가 영구 집권, ③ 미국에 의한 강압적 정권교체 방지 기반이란 사실을 인정한다. 말하자면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완전한 포기는 북한정권의 자살 또는 미국 정부에 목숨을 내맡기는 우매한 행동인 것이다.
이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한 환상이란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북한의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약속을 덜컥 믿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의 성급하고 어리석으며 무지한 행동은 두고두고 미국에게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요컨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란 지금처럼 ①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 계속, ② 핵·미사일 제조시설을 폐쇄하는 것 같은 퍼포먼스, ③ 어쩌면 일부 핵·미사일의 폐기 작업 등의 조합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이것이 비핵화의 종착점’이란 사실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나,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나, FFVD(최종적이고 완벽하게 검증된 핵폐기) 등은 자신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헛소리들의 모음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절대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8월 4일 싱가포르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핵 실험과 로켓 발사시험 중지, 핵 실험장 폐기 등 주동적으로 먼저 취한 선의의 조치에 대한 화답은커녕 미국에서는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주장에 미국은 실소를 금치 못하겠지만, 북한 정권도 그런 실소에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미국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북한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인지 모른다. “왜 내가 상대방의 우매한 착각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감히 시도해 본 적 없는 ‘북한과의 정상회담 성사’ 자체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것처럼 보인다.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 “약속을 지켜 감사하다”며 “또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고 말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그는 최근 이란의 루하니 대통령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란 대통령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이 “대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란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또 다시 “그들의 손에 놀아날 것(being played into their hands)”으로 우려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초반부터 CVID에서 PVID, FFVD로 갈팡질팡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다시 CVID를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비핵화 전망이 흐려지는 기미를 눈치 채고는 유엔 안보리와 중국, 러시아, 한국 등을 상대로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번 느슨해진 국제사회의 제재의지는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조여지지 않을 것이다.
차분히 복기해 보면 지금의 난국은 미국 행정부가 초래한 자해(self-inflicted wound)의 정황이 짙다. 북한의 의도를 오판하고, 북한의 非비핵화 의지를 과소평가하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쓴 맛을 본 전임자들의 실패 사례를 망각했을 뿐 아니라, 생사를 걸고 협상장에 나온 북한을 다루기 위한 준비마저 소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강대국의 위세와 완력만 믿고, “김정은과 한 방에 있게만 해주면, 금방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 너무 큰 도박을 걸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자신들의 능력(특히 한계)도 제대로 모르고, 상대방에 너무 무지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찍이 손자가 이런 상황을 두고 경고한 말이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이나,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면 매전필패(每戰必敗)”라고. 지금 미국이 하는 모양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제대로 학습하기도 전에 아마도 임기가 끝날 것 같다.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