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한·미 동맹관계,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로운 장 열어야 하는 과제 주어져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역사상 최초로 ‘용산’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한반도 안보의 주인은 우리라는 인식”을 강조했다. 기념행사 장소를 용산으로 택한 것은 의미심장한 결정이다. 문 대통령은 용산이 “111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로써 용산은 △ 13세기 몽고군의 병참기지, △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주둔지, △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 △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군의 병영기지, △ 해방 이후 주한미군 사령부를 거쳐 마침내 “우리 땅”으로 되돌아 왔다. 용산을 떠난 주한미군은 평택기지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지 착취와 한미동맹관계의 상징이던 용산을 가리키며, 한반도 평화시대와 동북아 상생번영 및 다자안보체제로 가는 대장정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한·미 동맹 관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장(a new chapter)을 열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일부에서는 용산을 ‘외세 강점의 상징’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일제는 타율적인 착취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미국과의 자발적인 동맹관계는 우리에게 발전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디플로매트, 주한미군 철수 등 생각할 수 없는 것 생각해야 하는 상황 언급
「디플로매트(The Diolomat)」 최신호는 “남한으로부터 미군철수에 대한 상상(Imagining the Withdrawal of US Forces from South Korea)”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즉, 얼마 전까지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금기어로 간주될 정도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가능성이 성큼 다가왔다는 말이다.
「디플로매트」가 언급한 근거는 3가지다. 첫째,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이다. 한국군이 1994년 평시 작전권을 인수한데 이어,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전시 작전권을 넘겨받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작년부터 미 국방부는 산하의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주한미군의 미래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둘째, 금년 6월 용산기지의 평택(Camp Humphrey) 이전이다. 이에 따라 한국군이 독자적 방위를 강조하는 반면, 미군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계획하고 있다. 셋째, 금년 4월 「판문점 선언」은 주한미군의 궁극적인 철수 가능성을 예고한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양국이 그 존재가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합의하는 시점에서 이뤄질 것이다. 확실히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미 그는 싱가포르에서의 미·북 정상회담 직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언젠가 난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대선유세 기간 동안에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 군인들을 빼내고 싶다(I want to get our soldiers out). 우리 군인들을 본토로 불러들이기를 원한다.”
미 의회가 2019회계년도 국방수권법안에 행정부로 하여금 주한미군을 2만 2000명 이하로 줄이지 못하도록 조건부 법안을 명기했지만,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법안도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되지 못할 것이다.
강대국과 약소국 간 동맹관계 ‘연루’와 ‘방기’라는 피할 수 없는 딜레마 존재
동맹관계, 특히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체결된 동맹관계에는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그 딜레마는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의 모순으로 나타난다. 강대국은 약소국과의 동맹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과의 분쟁에 끌려들어가는 ‘연루’를 우려한다. 약소국은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었지만, 결정적인 시기에 그 강대국이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방기’의 두려움에 시달린다.
냉전시기 내내, 우리는 언제 북한의 무력침략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방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베트남 전쟁 패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의 손으로”라는 명분으로 발표한 「닉슨 독트린」은 ‘방기’의 공포를 극대화시켰다.
더 이상 국가생존을 미국의 손에 내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박정희 정권은 ‘자주국방’과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반면, 「닉슨 독트린」은 약소국과의 동맹관계로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연루’의 두려움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연루의 두려움은 약소한 동맹국의 군사력과 국력이 낮을수록 증가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판문점에서의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의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 한·미 동맹관계와 주한미군을 둘러싼 상황이 미묘하면서도 뚜렷한 변화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동맹관계 굳혀주는 구심력보다 동맹관계 약화시키는 원심력 더 크게 작용
그동안 북한 핵무기의 그늘에 짓눌려 있던 남한 사람들은 “화염과 분노”를 여과 없이 표출하며 한반도 핵전쟁이라는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들먹이는 트럼프의 호전적 언행에 진저리를 쳤다. ‘한 강’이란 이름의 작가는 작년 10월에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기고문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마다 한국은 몸서리친다”고 썼다.
그런 표현은 강대국이자 동맹국인 미국이 북한과 벌이는 한반도 핵전쟁에서 애꿎은 간접피해(collateral damage)를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상징한다. 이는 상대적 약소국(남한)이 상대적 강대국인 동맹국(미국)과의 관계에서, ‘방기’보다는 ‘연루’에 더 큰 공포심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한이 동맹국인 미국의 전쟁 위협을 북한의 핵무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상황은 미국이 전통적인 동맹관계의 가치보다 동맹국의 무임승차를 혐오하는 상황과 ‘조화’를 이룬다. 이는 동맹관계를 굳혀주는 구심력보다는 동맹관계를 약화시키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상의 한·미동맹”은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용산시대’ 개막은 기회와 함께 치명적 위험도 예고
북한 비핵화를 우회하려는 어떤 시도나 정책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
“탱고 춤을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It takes two to tango).”는 말이 있다. 한 사람 만으로는 탱고를 출 수 없으므로, 둘이 모두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모양새는 두 사람이 동시에 탱고의 무대를 떠나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심은 두고라도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용산시대’ 개막은 새로운 동북아 화해와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가슴 벅찬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위대한 기회와 더불어 치명적 위험의 가능성을 동시에 예고한다.
일부 언론은 이를 가리켜 정부정책의 무게중심이 한·미동맹 일변도에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동했다는 “新(신)자주선언”으로까지 표현했다. 향후 30년간 남·북경협으로 170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는 장밋빛 청사진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현 시점에서 그러한 낙관적 희망사항들은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다. 정작 우리의 미래 운명에 직결되는 절체절명의 북한 비핵화 과제가 그대로 방치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를 우회하려는 어떤 시도나 정책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문제를 무시하거나 미뤄둔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핵화 없는 남·북 관계 개선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에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