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신중한 과정"에 있음을 강조
명확한 로드맵과 이정표 부재로 인한 안개속 모색 상태를 강도높게 지적
전쟁을 미국에 맡기고 안락하게 지냈던 한국이 주인의식 회복하는 대전환 요구
(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군은 “아직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not yet ready to take over wartime operational)”고 평가했다.
한국 언론은 이날 기자회견을 DMZ에서 GP 철수 같은 주제에 초점을 맞춰 긍정적 논조로 보도했지만, 「아시아 타임스(Asia Times)」 등 일부 외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국내 언론보도와 흐름이 다른 뉘앙스가 감지된다.
참고로 브룩스 사령관은 3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첫째는 정전협정을 관장하는 유엔군사령관, 둘째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미 연합군사령관, 셋째는 한국에 주둔한 28,500명의 미군을 지휘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다.
그는 최초의 흑인 출신 주한미군사령관이며, 코소보전쟁을 비롯하여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에서도 실전 경험을 쌓은 역전의 용사다. 브룩스 사령관은 군인이지만 그의 언변은 유창함, 솔직함과 더불어 빼어난 외교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고, 국민은 군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년 5월, 송영무 국방장관은 “국방개혁 2.0이 완성되는 2023년쯤에는 전작권이 환수돼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브룩스 사령관의 생각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관하여, “우리는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매우 신중한(very deliberate)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운을 떼었다.
그런 다음, 브룩스 사령관은 이러한 ‘조건’들을 ① 지휘통제 구조, ② 한국군이 갖춰야 할 모종의 핵심적인 군사 능력(some critical military capabilities), ③ 안보 환경의 실제적 조건(actual conditions) 등 3가지로 정리했다. ②번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③번은 “과연 (그 시기가)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적합한 시간(right time)인가?”라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을 해석해 보면, ②번과 ③번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브룩스 사령관은 “이들 분야에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변화를 일으키기에 적합하지 않은 시점(the time is not right to make a change yet)”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가 말하는 ‘변화’란 전작권 전환을 말한다.
앞서 3가지 조건 중에서 남은 것은 ①번이다. 이는 아마 그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면서도 가장 애매한 조건일 것이다. 일단 전작권 전환이 이뤄지려면 기존의 연합사령부는 해체되어야 한다. 설령 골격을 유지하더라도 사령관은 한국군이 맡게 된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사실상 받아들이기 불가능하다.
지난 2013년에도 한국군은 한·미 연합사령부를 존속시키면서 한국군이 사령관을 맡는 방안에 관한 의사를 미군 측에 타진해 보았다. 하지만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던 서먼(James D. Thurman)은 “금시초문”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다른 군사전문가들도 미군의 하급부대가 간혹 다른 국가 지휘관 밑에 있었던 적은 있으나, 대부대가 다른 국가 사령관의 지휘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한국이 구상한 방안은 “미군 역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전작권 전환으로 나아가는 명확한 로드맵이 없고, 그러다 보니 최종지점에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벤치마크(benchmark)’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한·미 간의 전작권 전환은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개 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는” 형국인 셈이다.
브룩스 사령관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한·미 연합군을 “양국 대통령의 수중에 맡겨진 즉응적 도구(a responsible instrument)”라고 표현했다. 즉, 이 군대는 양국의 국가통수기구가 명령만 내리면 즉시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완료된 국가의 도구라는 말이다. 이는 그의 인식 속에 문민통제 우위의 원칙이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외교적 성과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한·미 연합훈련이 조정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군사대비태세에 관해서는 외교적 노력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비태세의 위축을 막기 위해 보다 창의적인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고민의 흔적을 내보였다.
그래서 그는 훈련하지 않고 전투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연례적으로 실시되어 왔던 을지훈련의 무기한 중단을 빗대어, 대규모 부대가 혼연일체가 되어 집단적 경험을 쌓는 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귀중한 기회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그는 DMZ로부터의 GP 철수 문제도 거론했다. 우선 그는 이것이 “신뢰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긴장완화 조치의 모범적 사례”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그는 “위험도 따른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브룩스는 자신이 맡고 있는 3개의 직책들 사이에서 번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전협정 체제 유지와 DMZ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관으로서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긴장완화 조치를 지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울러, 문민통제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 군사 지휘관으로서도 한·미 국가통수권자들의 의도를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관 및 연합사령관으로서는 “군사분계선(MDL)과 더불어, 이를 넘어서는 종심 상에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하여 일부 우려(some concern)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트럼프-김정은 간의 미·북 정상회담 이후, 소련 해체와 독일 통일 이후에도 냉전체제에 머물러 있던 한반도에서 때늦은 탈냉전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앞장서서 남·북간 ‘데탕트’ 분위기 띄우기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일단 대전환을 시작한 추세의 흐름은 또 다른 중대한 변곡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일종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계속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대격변은 대전쟁의 발발 또는 냉전체제 해체 같은 양극단의 결과로 귀착되는 경향을 보였다.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은 단지 한국과 미국 중에서 어느 나라가 사령관 직책을 맡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군대의 존재 이유인 ‘전쟁’을 미국에게 내맡기고, 오랫동안 그럭저럭 안락하게 냉전시대를 지내왔던 우리 군대가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브룩스 사령관은 전작권 전환 조건을 3가지로 정리했지만, 정작 그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대목일지 모른다.
전작권 전환은 무작정 빨리 시한 내에 마쳐야 할 달음박질이 아니다. 이것의 전제조건은 연합방위태세가 결코 약화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가 서로 그동안 숱하게 외쳐왔던 “같이 갑시다”나 “긴밀한 한·미 공조”에도 불구하고, 브룩스 사령관이 하필이면 지금처럼 민감하고 중요한 시점에 공개 석상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불안감을 토로했다는 사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브룩스는 기자회견에서 전작권 전환이라는 대로를 빠르게 질주하는 한국 정부와 한국 군대의 앞길에 ‘노란불’을 켰다. 과속하지 말고 ‘서행’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진심은 “나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가 아닐까 싶다.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