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대북 특사단에 3가지 새로운 카드 제시
비핵화 시간표, 새 종전선언 조건,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 등 선보여
(시큐리티팩트=김철민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로 비핵화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또 다시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방북한 우리측 특사단을 만나 3가지의 새로운 메뉴를 선보임에 따라 북한 비핵화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첫째, 김 위원장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첫 임기 안에 북미간 적대의 역사를 청산하고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2021년 1월까지이다. 2년 반 이내에 끝내자는 ‘비핵화 시간표’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둘째, 한미동맹의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와 무관하게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자는 카드를 제시했다. 이 같은 제안은 워싱턴 정가에서 고조되는 종전선언의 위험성을 해소해주는 측면이 있다. 한미동맹의 유지를 전제로 해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한반도내에서 한미동맹, 유엔군사령부 등의 존립근거가 약화될 것이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셋째, 김 위원장은 오는 18~20일 동안 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제에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북미관계, 남북관계 등을 가속열차 궤도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문 대통령은 7일 인도네시아 일간지 '꼼빠스'에 실린 서면인터뷰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정착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화답했지만, 2021년 1월까지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 없어
3인의 구혼자 틈에서 김정은은 끊임없이 ‘손익계산서’ 재작성중
김 위원장이 던진 3가지 카드를 충분히 활용해 ‘한반도 운전자론’을 입증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정의용 실장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방북결과를 설명한 지난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면서 “함께 해내자”고 화답했다.
그러나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 및 북미관계가 일사천리로 풀려나갈 것이라는 관측은 없다. 김 위원장이 자신이 공언한대로 2021년 1월까지 문자그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실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원심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북한에 대한 비공식적인 경제원조와 암묵적인 대북경제제재 위반이라는 당근을 무기로 삼아 김 위원장이 트럼프의 페이스에서 이탈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미국과의 무역분쟁 및 군사적 대결에서 우회적인 압박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비핵화 국제정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크지는 않다. 오히려 워싱턴과 서울의 분석가들 사이에서 비핵화 국제정치의 주역들이 결국은 ‘절충안’을 향해 수렴해나갈 것이라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문 대통령, 비핵화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 북미관계 개선에 훼방을 놓으려는 시 주석 그리고 이처럼 서로 다른 주판알을 튕기는 지도자들 간에서 끊임없이 ‘손익계산서’를 재작성하는 김 위원장등 ‘파국’보다는 ‘절충점’을 선택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북핵 정국의 이단아 문정인 특보, ‘상당한 비핵화’와 ‘북미수교’ 맞바꾸는 절충안 제시
문정인의 절충안은 대북 특사단 통해 확인된 김정은의 속내 반영?
이와 관련해 북핵 정국 속에서 돌출발언과 천기누설을 오가는 ‘이단아’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7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절충안’에 합의할 가능성을 제기해 관심을 끌었다.
비핵화 단계마다 보상을 요구하는 김 위원장과 ‘선비핵화-후보상’을 고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은 중간지점에서 손을 잡지 않는다면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린 발언이었다.
문 특보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화두로 던진 절충안은 대북특사단을 통해 확인된 김정은의 속내에 수렴하는 내용일 것이라는 해석도 흘러나온다.
문 특보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주최한 '북미관계와 북핵전망' 강연에서 "북미수교를 비핵화의 마지막 출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면서 "북한이 (10에서) 5∼6 정도 비핵화 행보를 보이면 미국에서 선제 조치를 포함해 북한과 수교를 맺는 것도 좋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있어야 협상 모니터링도 용이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상당한 비핵화’ 이후에 ‘상당한 보상’을 해주자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방안이 실행되려면 현재 양극단에 서서 대치중인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야 한다.
물론 문 특보는 트럼프의 양보에 무게를 두는 태도를 보였다. 문 특보는 "북미 간 핵 관련 신고·사찰 협상 상황은 외교 비밀이어서 제가 알 수 없다"면서도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측에서 (핵 물질·시설의) 신고 및 사찰과 관련해 상당히 파격적인 양보를 했는데 북측이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의 양보로는 북한의 실행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인식인 셈이다.
그렇다고 문 특보가 북한 입장에 경도됐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그는 비핵화 과정이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문 특보는 "완전한 비핵화는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탄도미사일, 핵 과학자와 기술자, 5개를 완전히 없애는 것인데, 2년 반 사이에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는 또 사찰과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동결과 신고, 사찰, 검증이라는 점진적 과정을 겪으면서 2년 반 내에 비핵화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비핵화를 하려면 그런 선제 조치를 북한이 고려해야 시간표를 맞줘야 한다” 말했다.
결국 2년 반 이내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에는 물리적 조건 및 북미간의 신뢰관계가 불충분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절반 정도의 비핵화 조치 이후 북미수교를 체결할 경우 양자 간 신뢰관계가 성숙되면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가능하다는 분석인 셈이다.
물론 문특보가 제기한 절충론이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번에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화끈하게 받아들일 새로운 카드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비핵화 국제정세는 ‘파국’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