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noname012.png▲ 폴 매너포트가 유죄를 인정하고 특검에 협조할 것이란 사실을 보도하는 CNN 화면 캡처
 
(시큐리티팩트=송승종 전문기자)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 뮬러 특검에 협조 동의

9월 14일(현지시각) AP 통신,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등 주요 외신들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제1호’로 기소한 폴 매너포트가 유죄를 인정하고, 특검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매너포트는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의 선대본부장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매너포트는 뮬러 특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완전하고, 진실되고, 하나도 남김없이, 솔직하게(fully, truthfully, completely, and forthrightly)” 협조하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말이 좋아 ‘협조’지, 이 정도면 ‘무조건 항복’이다. 매너포트의 예상치 못한 백기 투항은 뮬러 특검에게 ‘결정적 승리’로 기록된다. 마침내 뮬러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이 가시화된 것이다.

매너포트는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명실상부한 일등공신이다. 과거에도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등 역대 공화당 후보들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선거전문가이자 로비스트 출신이다.

포드, 레이건, 부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홍보전문가이자 정치 전략가

매너포트가 정계에 데뷔한 건 조지타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1973년 때였다. 당시 매너포트는 포드 행정부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했다. 1976년 매너포트는 빛을 발하게 된다. 레이건과 포드가 공화당 경선에서 승자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자, 매너포트는 27세 나이에 대선 캠프를 이끌었으며, 포드는 근소한 차이로 레이건을 누르고 공화당 대선후보에 당선되었다. 이를 계기로 매너포트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매너포트는 레이건을 도와 1980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1988년 조지 H. W. 부시의 대선 캠프에도 합류하여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 무렵 그에게는 “정력적인 홍보전문가이자 정계 내부인사”와 “악명 높은 지도자를 만든 정치 전략가”라는 두 가지 평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매너포트는 친러시아 인사들과 교분을 쌓고, 이들을 위한 로비스트 또는 브로커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 정보부 공작원 및 올리가르히(oligarch, 러시아의 소수 특권계층)들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고 광범위하게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 러시아 인사와 교분 쌓고, 이들의 로비스트 역할하며 막대한 재산 축적

그는 콘스탄틴 킬림니크(Konstantin V. Kilimnik)란 사람과 우크라이나에서 수년간 활동했는데, 러시아 국적의 킬림니크는 러시아 정보부의 주요 인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국, 매너포트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이너서클들과 가까운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또 매너포트는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V. Deripaska)라는 러시아 사업가와 거래관계를 맺었는데, 그는 푸틴과 매우 가까운 러시아 올리가르히 중 한 사람이다. 데리파스카는 매너포트에게 빌려준 1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돌려받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는 (수상할 정도로) 막역하다.

일찍이 매너포트는 1980년대에 로비회사를 차려, 앙골라의 사빔비(Jonas Savimbi)나 필리핀의 마르코스(Ferdinando Marcos) 같은 고약한 독재자들을 위한 영향력 행사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

2005년에는 아크메토프(Rinat Mkhmtov)라는 부유한 기업인의 소개로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당인 ‘Party of Regions’에 로비스트로 합류했다. 당시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대선후보였다. 매너포트의 도움을 받은 야누코비치가 2010년 대선에서 승리를 하였고, 야누코비치는 2014년 민중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러시아로 도망칠 때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야누코비치로부터 막대한 자금지원 받으며 첩보원 역할

그는 우크라이나 로비스트 시절, 자신이 국제적 명망을 갖춘 유럽 국가들의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합스부르크 그룹(Hapsburg Group)’이란 단체를 조직하여 전직 폴란드 대통령, 이태리 수상, 오스트리아 수상 등을 포섭하여 끌어 들이는 수완을 발휘했다. 실제로 2013년 5월, 그 중 한 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과의 회동을 주선하기도 했다.

매너포트를 기소한 와이스만(Andrew Weissmann) 검사는 매너포트가 2010~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F. Yajukovych)를 위한 로비스트이자 브로커 노릇을 포함하여, 약 10년간 불법적 범죄활동을 벌이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고 밝혔다. 매너포트는 미국에서 야누코비치의 이미지를 미화하고, 그의 정적인 율리아 티모셴코(Yulia V. Tymoshenko)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눈부신 활약을 했다.

그는 겉으로는 독립적 행위자(independent actor)로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야누코비치로부터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는 ‘유급 첩보원(paid operative)’  역할을 했다. 그는 법에 따라 법무부에 이러한 로비활동 내역을 신고하는 의무를 위반했다. 매너포트에게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들인 수천만 달러를 해외 은행구좌를 통해 돈세탁하고, 막대한 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씌워졌다.

‘러시아 개입 혐의’ 조사에 핵심적 인물로 80년 형 선고받을 처지되자 백기투항

매너포트는 뮬러 특검이 부여받은 임무인 ‘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의 개입 혐의’를 조사하는데 핵심적 인물이다. 원래 그는 돈세탁에서부터 탈세, 불법 해외로비, 금융사기 등에 이르는 총 18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된 내용은 트럼프 대선캠프의 러시아 공모와는 거리가 먼 개인비리 혐의가 주를 이뤘다.

그래서 1차 공판에서는 1만 5천 달러짜리 타조재킷, 2만 달러가 넘는 시계, 137만 달러어치의 의복 쇼핑 등, 그의 낭비벽과 호화생활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 버지니아 주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검찰은 매너포트가 2010년~2014년까지 우크라이나 선거에서 로비스트를 하며, 해외계좌에 6,500만 달러를 받았고, 쇼핑과 부동산 구입에 1,500만 달러를 지출했으며, 은행에 허위 서류를 제출하고 2,500만 달러의 불법대출을 받았다고 밝혔다.

배심원단은 8가지 혐의에 유죄라고 평결(8월 21일)하고, 10개 혐의에서는 배심원단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미결정심리(범죄혐의를 보강하여 다시 기소하면 새로운 재판 가능)’가 선언되었다. 이에 따라 매너포트는 최대 80년 형을 선고받을 처지가 됐다.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69세의 매너포트는 종신형을 받기 전에, 형을 줄이기 위한 플리바게닝에 나선 것이다. 매너포트가 유죄를 인정하고 솔직한 협조를 약속한 대가로 검찰은 2건만 기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최대 형량은 80년에서 10년으로 줄어들게 된다.

향후 뮬러 특검의 수사 초점은 유명한 ‘2016년 트럼프 타워 회동’에 맞춰져

매너포트가 3일간의 플리바게닝 협상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특검 측에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대통령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는 “이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선운동과 관계가 없는 것이 결론”이라고 주장하며, 매너포트와 거리를 뒀다. 그러면서, 그 이유는 “대통령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폴 매너포트는 진실을 말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향후 뮬러 특검의 수사 초점은 그 유명한 ‘2016년 트럼프 타워 회동’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타워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러시아 측 인사로부터 경선 대상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관해 ‘불리한 증거(dirt)’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후에 이뤄졌다.

매너포트는 트럼프 대통령 아들(트럼프 주니어), 트럼프 대통령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와 더불어 2016년 트럼프 타워 회동에 참석한 ‘3인방’이다. 이날의 회동은 뮬러 특검이 수사의 초점을 맞추는 ‘러시아 공모’가 실제 이뤄진 현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매너포트는 그날 여성 변호사(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를 비롯한 러시아 인사들과 트럼프 캠프 핵심인물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장본인이다.

회동 ‘3인방’ 중 하나로 대화 전모를 밝혀줄 인물이 플리바게닝에 동의 
 
따라서 ‘무조건 항복’을 외치며 ‘백기투항’한 매너포트 입에서 그날 대화의 전모가 밝혀지면,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간의 공모’가 사실로 확인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뮬러 특검은 “당시 대선후보였던 트럼프가 그 모임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왜 트럼프는 그 모임이 있은 직후에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중대발표’를 선언했는지?”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인들과 약 80회의 접촉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위키리크스(WikiLeaks)와 트럼프 캠프가 손잡았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파헤칠 것이다. 이런 질문들의 답변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해결사(fixer)’이자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8월 22일 플리바게닝에 동의하며 유죄 인정을 하는 모습에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성관계를 가진 포르노 여배우에게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지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검찰에 자백했다.

트럼프는 그 때까지 그런 일은 알지도 못하고, 시킨 적도 없다고 부인했었다. 그러면서 1차 재판에서 끝까지 침묵을 지킨 매너포트에게 마이클 코언과 달리 “무너지기를 거부(refused to break)했다”고 칭찬하고, ‘용감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무한한 존경심을 보냈다. 그런 매너포트가 백기 투항한 것이다.

뮬러는 일찍부터 다른 용의자들을 모두 다른 검사에게 배정하고, 매너포트 만큼은 자신이 직접 챙겼다. 매너포트가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의 공모 여부를 밝히는 핵심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트럼프는 매너포트가 ‘침묵’을 지켜주면, 형이 확정되더라도 즉각 ‘사면’ 조치를 단행하겠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흘리며 매너포트에 대한 회유를 시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사법방해’ 행위에 해당된다. ‘사법방해’는 대통령 탄핵사유다.

트럼프에게 ‘매너포트 백기 투항’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시간이 말해 줄 것
 
매너포트는 뮬러 특검이 자신에게 종신형을 내릴 수 있는 집념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 한편, 트럼프는 한때 충복이던 매너포트가 ‘사면’ 약속을 끝까지 믿고, 자신을 위해 침묵을 지켜 줄 것이라는 점을 과대평가했다.

역대 대통령 같았으면 벌써 치명타를 입었을 온갖 변덕과 추문과 기행에도 지금까지 불사조처럼 끄떡없었던 트럼프에게 ‘매너포트 백기투항’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갖겠다고 한다. 무슨 성과가 있을 것인지는 트럼프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굳이 하겠다는 정상회담을 막을 도리는 없다. 단지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지 않는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겨눈 뮬러 특검 수사의 향배가 한반도 비핵화에 미치게 될 일파만파의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송승종_200픽셀.jpg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교수(美 미주리 주립대 국제정치학박사)
국가보훈처 자문위원
미래군사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前 駐제네바 군축담당관 겸 국방무관: 국제군축회의 정부대표
前 駐이라크(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MNF-I) 한국군 협조단장
前 駐유엔대표부 정무참사관 겸 군사담당관
前 국방부 정책실 미국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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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분석] 매너포트의 유죄 인정, 트럼프 대통령 몰락의 서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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